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증(ATTR-CM): 진단이 늦을수록 치명적이다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증이란? — 단백질 하나가 심장을 위협하다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증(ATTR, Transthyretin Amyloidosis)**은 간에서 생성되는 트랜스티레틴(TTR)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변형되며 아밀로이드 섬유 형태로 심장, 말초신경, 소화기계 등에 침착되는 진행성 질환입니다. 이 중 **심장형 아밀로이드증(ATTR-CM)**은 아밀로이드 섬유가 심장에 침착되어 심부전, 심근 비대, 부정맥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형태입니다.
ATTR-CM은 **‘비정상 단백질이 심장을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병’**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주요 유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유전성 ATTR(hATTR)**으로, TTR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어 단백질이 불안정하게 변형되고 침착되는 유형입니다. 둘째는 **비유전성·노화 관련 ATTR(wild-type ATTR)**으로, 주로 고령 남성에게서 발생하며 특정 유전적 이상 없이도 자연적으로 단백질이 변형되어 나타납니다.
ATTR-CM은 다른 심장 질환과 유사한 증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심근증, 고혈압성 심장병, 허혈성 심장질환 등과 쉽게 혼동됩니다. 초기에는 별다른 특이한 증상이 없거나 심장 질환으로 오진되기 쉬워 진단이 평균 2~5년 이상 지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고령 환자에게서의 무증상 진행이 흔하여 질병이 상당히 진행된 후에야 발견되는 경우가 많고, 이때는 치료가 늦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ATTR-CM은 그 자체로도 위험하지만, **‘진단 지연이 곧 예후 악화로 직결되는 대표적 희귀 심장질환’**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질병입니다.
ATTR-CM의 주요 증상과 감별 진단의 핵심
ATTR-CM은 진행에 따라 다양한 심장 관련 증상을 유발합니다. 가장 흔한 초기 증상은 운동 시 호흡곤란, 하지 부종, 피로감 등 좌심실 기능 저하와 관련된 심부전 증상입니다. 또한, 심장 벽이 점차 두꺼워지고 뻣뻣해지면서 **심근비대(Hypertrophy)**가 나타나는데, 이는 초음파에서 좌심실벽 두께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한 모습으로 확인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ATTR-CM 환자에게서는 다음과 같은 비전형적 증상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심전도상 낮은 QRS 전압과 심근비대가 동반되는 특이 소견
-심방세동, 심실성 빈맥 등 부정맥 빈도 증가
-양측 손목터널증후군(Carpal Tunnel Syndrome): ATTR-CM 환자의 약 30~50%에서 수년 전부터 나타나며, 조기 경고 신호일 수 있음
-족저근막염, 이두근 파열 등 결합조직 관련 증상
-자율신경계 이상(어지럼증, 발한 저하 등)
이러한 다기능적 증상들은 단순한 심부전으로 오인되기 쉽지만, 특유의 징후들 — 특히 손목터널증후군과 심근 비대, 심전도 이상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 — 에는 반드시 ATTR-CM 감별 진단을 고려해야 합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절차가 필요합니다:
-심장 MRI: 심근조직의 아밀로이드 침착 여부 확인
-핵의학 검사(99mTc-PYP 스캔): 방사성 동위원소가 아밀로이드에 결합하는 특성을 활용
-심장 조직 생검 또는 지방조직 생검: 조직 내 아밀로이드 확인
-유전자 검사: hATTR와 wtATTR 구분을 위한 필수 절차
이러한 진단 알고리즘은 다양한 병원을 통해 단계별로 적용되어야 하며, 특히 심부전 치료 반응이 저조하거나 비정형 증상이 동반될 경우 ATTR-CM을 항상 배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ATTR-CM의 치료법과 생존률 향상의 열쇠
과거에는 ATTR-CM의 치료가 거의 불가능했지만, 최근 들어 질병 진행을 늦추거나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치료제들이 개발되며 생존률 향상에 큰 전환점이 생겼습니다. 현재 대표적인 치료 방식은 트랜스티레틴 단백질의 변형 및 침착을 억제하거나 제거하는 치료 전략입니다.
TTR 안정제 (대표 약물: 테파미디스 Tafamidis)
가장 먼저 주목받은 치료제로, 변형된 트랜스티레틴 단백질이 아밀로이드 섬유로 침착되지 않도록 막는 약물입니다. ATTR-CM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는 테파미디스 투여군이 위약군보다 사망률이 유의미하게 낮았고, 입원 빈도도 감소했습니다.
특히, 질병이 초기 단계일수록 약물의 효과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조기 진단이 핵심입니다.
RNA 기반 치료제 (siRNA 및 antisense oligonucleotide 계열)
대표적으로 **파티시란(Patisiran)**과 **인오테르센(Inotersen)**이 있으며, 이는 간에서 생성되는 TTR 단백질 자체를 유전적으로 억제하여 생산량을 줄이는 방식입니다. 현재까지는 주로 **신경형(hATTR-PN)**에서 승인되었지만, 일부 심장형 환자에서도 병용 또는 임상시험 형태로 투여 중입니다.
보조치료 및 심부전 치료
전통적인 심부전 치료제(ACEi, β차단제 등)는 ATTR-CM에서 효과가 미미하거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대신, 이뇨제, 부정맥 조절, 심장 재동기화 요법(CRT) 등 증상 조절 중심의 보조 치료가 병행됩니다.
특히 ATTR-CM은 진단 시점에 따라 5년 생존율이 20~70%까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진단이 곧 치료 기회의 창(Window of Opportunity)**으로 직결되는 질환임을 반드시 인지해야 합니다.
국내 ATTR-CM 진단 환경과 사회적 인식 개선 필요성
국내에서는 ATTR-CM이 여전히 생소한 질환이며, 심장내과 의사들조차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일반 심근증으로 진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고령 환자에서 심부전이 나타나면 ‘나이 탓’으로 간주되기 쉬워 조기 진단 기회가 줄어들고, 이로 인해 치료 시기를 놓치는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ATTR-CM이 진단되기만 하면 치료 옵션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질병 코드 미등록, 약가 문제, 건강보험 미적용 치료제 등의 제약으로 인해 환자와 가족의 경제적 부담이 극심하다는 것입니다. 테파미디스 역시 아직까지는 고가의 치료제로 분류되어 있어, 치료를 시작하지 못하는 환자가 많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고령 심부전 환자 대상 ATTR-CM 스크리닝 지침 개발
-의료진 대상 희귀 심장질환 교육 프로그램 확대
-질환 등록제 및 산정특례 포함을 통한 약제비 지원 확대
-환자 커뮤니티 활성화 및 공공 정보 포털 구축
또한, 환자 입장에서는 **‘진단을 받아야 비로소 치료받을 수 있다’**는 현실을 이해하고, 일반적인 심장병과 다른 증상이 느껴진다면 스스로 ATTR-CM을 의심하고 전문센터를 찾는 행동력이 필요합니다.
희귀하지만 절대 방치해서는 안 되는 ATTR-CM, 그 진짜 위험성은 **병 그 자체보다도 ‘진단 지연’**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