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질병

지방산 산화장애(FAOD)의 진단 알고리즘과 한국 내 대응

zidan05 2025. 4. 17. 14:25

지방산 산화 장애(FAOD)란? — 에너지 대사에 숨겨진 위기

 

**지방산 산화장애(FAOD, Fatty Acid Oxidation Disorders)**는 인체의 주요 에너지원인 지방산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에 이상이 생기는 희귀 대사질환군입니다. 이 질환은 주로 미토콘드리아 내 지방산 베타 산화 경로에 관여하는 효소 결핍으로 인해 발생하며, 간, 근육, 심장, 뇌 등 고에너지 소모 기관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칩니다.

FAOD는 단일 질환이 아니라, 다양한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하위 유형을 포함합니다. 대표적인 유형으로는 MCADD(중쇄지방산 산화 장애), VLCADD(장쇄지방산 산화 장애), LCHADD(장쇄-3-하이드록시아실-CoA 탈수소효소 결핍) 등이 있으며, 이 외에도 약 15종 이상의 FAOD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경우, 사람은 식사 사이 혹은 수면 중 에너지가 부족해지면 지방산을 산화시켜 에너지를 보충합니다. 하지만 FAOD 환자들은 이 과정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금식이나 감염 등으로 대사 스트레스가 증가할 경우 저혈당, 근육통, 심부전, 간 기능 저하,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특히 영유아 시기에는 단 한 번의 금식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조기 진단과 지속적인 관리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FAOD의 주요 증상과 임상적 특징

 

지방산 산화 장애는 유아기부터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에서 비특이적이고 다양한 양상으로 발현될 수 있습니다. 가장 전형적인 증상은 **금식 또는 질병 상태에서 발생하는 저혈당증(hypoketotic hypoglycemia)**이며, 이는 혈당은 낮으나 케톤체가 생성되지 않는 비케톤성 저혈당이라는 특징적인 대사 이상입니다.

MCADD 환자의 경우, 감기나 설사처럼 흔한 감염만으로도 갑작스러운 에너지 대사 장애가 유발되며, 의식 저하와 경련, 혼수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다. VLCADD와 LCHADD는 특히 심근과 골격근에 아밀로이드 침착 및 에너지 부족으로 인해 근육통, 근육약화, 심부전이 동반될 수 있으며, 장기적인 합병증으로 심근병증, 간기능 이상, 말초 신경병증 등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신생아기에는 무증상일 수 있으나, 초기 증상이 사망으로 이어질 만큼 급격하게 진행될 수 있으므로 신속한 개입과 교육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일부 성인 환자에서는 간헐적인 근육 통증과 피로, 운동불내성이 주 증상으로 나타나 일반적인 근육 질환으로 오진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임상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경우 FAOD를 의심해야 합니다:

-금식 후 저혈당, 무케톤혈증

-원인 모를 심근병증

-반복적인 횡문근융해증

-갑작스러운 신생아 돌연사

-감염 시 심각한 대사성 산증 동반

 

지방산 산화장애의 진단 알고리즘

 

FAOD의 진단은 생후 빠른 시기에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대부분 **신생아 선별검사(NBS, Newborn Screening)**에서 초기 선별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현재 MCADD, VLCADD, LCHADD 등 3종의 FAOD가 선별 항목에 포함되어 있으며, **건조혈점(Dried Blood Spot)**을 이용한 혈중 아실카르니틴(acylcarnitine) 분석으로 진단 단서를 확보합니다.

이후 정밀검사 단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절차가 포함됩니다:

확진 검사 - 아실카르니틴 프로파일링 (Tandem Mass Spectrometry)
고유의 프로파일 패턴을 통해 FAOD의 유형을 감별합니다.

유전자 검사 (NGS panel 또는 단일 유전자 분석)
MCAD 유전자(MCAD), VLCAD 유전자(ACADVL), LCHAD 유전자(HADHA)의 병리적 돌연변이 확인이 필수입니다.

효소활성 측정 - 피부섬유아세포 또는 림프구 이용
효소의 실제 활성을 측정하여 기능적 결핍 여부를 확인합니다.

진단이 확정되면 해당 유형에 따라 맞춤형 식이요법, 감염관리, 위기상황 대응 플랜이 설정됩니다. 진단 초기부터 소아내분비, 소아 심장, 유전의학 전문가 등 다학제 팀이 협진 체계로 개입하는 것이 권장됩니다.

중요한 것은, 신생아 스크리닝에 포함되지 않은 FAOD 유형도 존재하므로, 비전형적인 임상 증상을 보이는 경우에는 임상의가 스크리닝 결과와 관계없이 추가 검사를 진행하는 적극성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지방산 산화장애(FAOD)의 진단 알고리즘과 한국 내 대응

한국 내 FAOD 대응 시스템과 한계

 

한국은 2000년대 이후 FAOD를 포함한 선천성 대사질환의 조기 진단 체계를 갖추었으며, 신생아 선별검사 비용 지원과 국가적 진료 가이드라인 구축 등에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질병관리청과 국립중앙의료원 희귀질환센터, 그리고 지역 거점 대사질환 클리닉이 중심이 되어 조기 진단과 지속적인 환자 추적 관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MCADD, VLCADD, LCHADD는 모두 희귀질환으로 산정특례 등록이 가능하며, 의료비 지원과 유전자검사 비용 일부 보조, 전문영양식 지원 등을 통해 환자와 가족의 부담을 줄이려는 제도적 틀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 간 진단 인프라의 차이, 비선별 FAOD에 대한 대응 미비, 소아 이후의 성인기 전환 치료 시스템 부족 등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지방 거주자의 경우 진단 기관에 접근하는 데 시간이 지체되거나, 응급 상황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 의료진은 FAOD에 대한 전문 지식이나 진단 경험이 부족하여, 비전형 증상 환자를 일반 감염이나 간염, 심근염으로 오진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진단 지연과 불필요한 검사, 치료 실패로 이어지기 때문에, 보다 광범위한 교육과 임상 사례 공유 체계의 강화가 절실합니다.


FAOD 환자의 삶과 장기 관리 전략

 

FAOD는 치료제 중심의 질환이 아니라, **생활 전반을 조정해야 하는 ‘관리형 희귀질환’**입니다. 특히 식사 시간 간격 유지, 감염 시 빠른 병원 접근, 적절한 에너지 보충식 섭취 등 일상 속 예방이 생명을 좌우하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의 생활관리 능력 향상이 치료의 핵심이 됩니다.

주요 관리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금식 피하기: 야간 금식 최대 6시간 이내, 수면 전 탄수화물 섭취 필수

고지방식 제한, MCT(중쇄지방산) 사용 여부는 유형별로 조정

감염이나 스트레스 상황에서 **응급 대응 플랜(Glucose infusion 등)**을 즉시 시행

운동 제한 및 충분한 수분·전해질 관리로 근육 손상 방지

또한, FAOD 환자의 성장 발달을 위한 영양사, 내분비전문의, 심장전문의, 재활의학과 등과의 다학제적 연계가 중요하며, 보호자 및 교사를 대상으로 한 질환 교육자료 제공과 위기 대응 매뉴얼 배포가 필요합니다.

사회적으로는 FAOD 환자와 가족이 겪는 불안감, 죄책감, 돌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심리 상담, 환우회 연계, 자조모임 활동 지원 등 정서적 지지 체계도 확대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건강한 자립과 사회 참여가 가능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