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질병

선천성 미토콘드리아 대사장애, 증상 없는 유전자 질환의 위협

zidan05 2025. 4. 18. 19:42

미토콘드리아 대사장애란? — 세포 속 발전소가 무너질 때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는 세포 내에서 에너지를 생성하는 '발전소' 역할을 하는 소기관으로, 특히 뇌, 심장, 근육 등 에너지 요구량이 높은 조직에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합니다. 이 미토콘드리아에 유전적 결함이 생기면 에너지 생산 경로에 문제가 생기고, 결과적으로 온몸의 다양한 조직에 장애가 발생하는데, 이를 **미토콘드리아 대사장애(Mitochondrial Metabolic Disorders)**라고 합니다.

특히 선천성 미토콘드리아 대사장애는 출생 전후 또는 영유아기 초기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으며, 단순한 피로감부터 시작하여 간질, 근육 약화, 시력 저하, 청력 손실, 심장 이상, 발달 지연 등 매우 다양한 임상 양상을 보입니다. 이러한 증상들은 기존 질환과 혼동되기 쉬운 비특이적인 형태로 나타나며, 환자에 따라 증상의 유무, 진행 속도, 장기 침범 범위가 극단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진단 자체가 매우 어렵습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자신만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미토콘드리아 DNA, mtDNA), 이 외에도 **핵 내 유전자(Nuclear DNA, nDNA)**에서도 기능 조절 유전자가 존재하여, 이 두 가지 유전 경로 모두에서 이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전 양상도 다양하며, 모계 유전, 상염색체 열성, 우성, 복합 유전 등 여러 방식으로 유전됩니다.

문제는 일부 유전자 결함이 있어도 증상이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거나, 특정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만 발현되는 경우가 있다는 점입니다. 즉, “무증상 보인자(carrier)” 혹은 “잠복기 환자”의 개념이 적용될 수 있어, 조기 발견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위급한 시점에서 돌연 증상이 폭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증상 없는 미토콘드리아 질환 — 왜 조기 진단이 어려운가

 

미토콘드리아 질환의 가장 큰 진단적 장애물은 ‘무증상 또는 비특이 증상’으로 인해 초기에는 의심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많은 환자들이 단순한 소화불량, 간헐적 근육통, 운동 후 피로, 두통, 학습 부진 등의 사소한 증상으로 수년간 병원을 전전하지만, 명확한 병명을 듣지 못한 채 방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진단 지연은 미토콘드리아 질환 특유의 **‘불완전 발현(incomplete penetrance)’**과 ‘가변 표현성(variable expressivity)’ 때문입니다. 같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도 어떤 장기가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가 각기 다르고, 어떤 스트레스 상황에서 발현되느냐에 따라 증상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동일한 유전적 돌연변이를 가진 가족 중 한 명은 심장병으로, 다른 사람은 간질로, 또 다른 사람은 아무 증상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특히 일부 유전자 결함은 어린 시절에는 증상이 없지만, 감염, 발열, 외상, 약물 복용 등의 자극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며, 이 경우는 진단 시점에서 이미 비가역적인 장기 손상이 진행된 상태일 수 있습니다.

또한, 기존 검사로는 확인이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일반 혈액검사나 MRI에서도 뚜렷한 이상이 보이지 않으며, **특수 대사검사(젖산, 피루브산, 아미노산 분석 등)**나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으면 단서를 잡기 어렵습니다. 결국 의료진의 높은 의심 지수와 유전자 해석 능력, 그리고 가족력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조기 진단을 위한 핵심 요소가 됩니다.

선천성 미토콘드리아 대사장애, 증상 없는 유전자 질환의 위협

 


선천성 미토콘드리아 대사장애의 주요 유형과 임상 양상

 

선천성 미토콘드리아 대사장애는 한 가지 질환이 아니라 다양한 임상적 표현형을 가진 질환군의 집합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가장 잘 알려진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MELAS(Mitochondrial Encephalomyopathy, Lactic Acidosis, and Stroke-like episodes)
뇌졸중 유사 증상, 간질, 젖산산증을 동반하며, 학령기 이전 또는 청소년기에 발병합니다.

-Leigh 증후군(Leigh Syndrome)
신생아기나 유아기에 발병하며, 발달 지연, 근긴장 저하, 호흡장애, 뇌간 손상이 특징입니다. MRI에서 대칭적 기저핵 병변이 나타납니다.

-Alpers 증후군(Alpers-Huttenlocher syndrome)
소아기 간질과 간기능 저하, 뇌 위축이 동반되는 빠르게 진행되는 질환입니다. POLG 유전자 돌연변이가 주된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Kearns-Sayre 증후군(KSS)
눈꺼풀 처짐, 안구 운동 마비, 심장 전도 장애, 골격근 위축 등이 특징이며, 청소년기에 발병하여 진행성으로 나타납니다.

이 외에도 NARP 증후군, MERRF, mtDNA 결손 증후군, 복합효소 결핍 질환 등 여러 질환이 있으며, 각각의 임상 양상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에너지 대사 장애로 인해 여러 장기를 동시에 침범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특히 중요한 점은 진단된 시점이 곧 예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는 점입니다. 치료의 중심은 대부분 대사 스트레스 관리, 젖산 축적 방지, 에너지 공급 보조(예: 코엔자임Q10, 비타민 B군) 등이며, 현재까지 근본적 치료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질환 발현 이전에 위험 보인자를 조기 발견하고, 증상 발현을 늦추거나 예방하는 전략이 절대적입니다.


한국 내 대응과 조기 진단의 필요성

 

현재 한국에서는 일부 대사성 질환에 대한 신생아 선별검사가 시행되고 있으나, 대다수의 미토콘드리아 질환은 선별 항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진단은 환자의 증상이 발현된 후에야 가능해지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희귀질환으로 등록된 일부 유형(MELAS, Leigh 등)은 산정특례를 통한 진료비 경감, 유전자 검사비 일부 지원, 영양치료 비용 보조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질병코드가 없는 기타 미토콘드리아 질환은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진단조차 누락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전자 검사는 대부분 **NGS 기반의 대사질환 패널 또는 전장 엑솜 시퀀싱(WES)**을 통해 이루어지며, 민간 유전자검사기관 및 대학병원에서 검사 가능합니다. 그러나 검사비 부담이 크고, 검사 후 변이 해석 능력이 부족한 경우 ‘의미불명 변이(VUS)’로 분류되어 임상 적용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치가 필요합니다:

-미토콘드리아 질환에 특화된 전문 클리닉과 다학제 진료센터 확대

-NGS 유전자 해석 역량을 갖춘 유전의학자 양성 및 환자 데이터 공유 시스템 구축

-신생아 선별검사 항목 확대 및 고위험군 스크리닝 시범사업 추진

-산정특례 미등록 질환에 대한 단계적 포함 추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직 증상이 없더라도 위험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고, 무증상 보인자도 정기적인 관찰과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더 많은 생명을 지키고 더 많은 가족의 고통을 줄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