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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대부업·NPL 실무자의 실패 기록 아카이브

운영의 ‘유연성’이 손실로 전환되는 순간

by zidan05 2026. 2. 14.

1. 유연함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작은 타협

 

어떤 조직도 처음부터 원칙을 무너뜨리려는 의도로 운영을 시작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은 명확한 내부 기준과 절차를 갖추고 출발한다. 문제는 그 기준이 실제 현장의 복잡성을 모두 담아내지 못할 때 발생한다. 서류상 담보 비율은 적정하지만 위치가 애매하거나, 차주의 재무제표는 약하지만 실제 사업 흐름은 나쁘지 않아 보이는 경우처럼 애매한 상황이 등장한다. 이때 담당자는 규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대신 상황을 고려한 결정을 내리고 싶어진다. 그 순간 유연성은 합리적 판단처럼 보인다.

처음의 타협은 아주 작다. 내부 한도를 약간 초과하거나, 상환 계획을 조금 완화하거나, 보완 서류를 사후에 받기로 약속하는 수준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경직된 규정보다 현실적인 접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조정이 구조 안에서 관리되지 않을 때다. 예외를 허용한 이유, 그에 대한 보완 조건, 재검토 시점이 명확히 기록되지 않으면, 그 결정은 개인의 기억과 감각에 의존하게 된다.

기억은 선택적으로 남는다. 성공 사례는 또렷하게 남고, 애매했던 불안 요소는 흐릿해진다. 그렇게 되면 이후 유사한 상황에서 기준은 점점 더 느슨해진다. 처음에는 5%의 완화였지만, 다음에는 10%가 된다. 내부에서는 이를 ‘경험이 쌓인 결과’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통제되지 않은 확장일 수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 과정이 조직 전체에 공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외를 허용한 판단의 맥락이 문서화되지 않으면, 다른 실무자는 그 결정을 재현할 수 없다. 기준은 존재하지만, 실제 판단은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이 시점부터 조직은 체계가 아니라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개인이 바뀌거나 환경이 달라질 때 그 취약성이 드러난다.

유연성이 손실로 전환되는 첫 번째 신호는 기준이 조용히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부에서 아무도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순간이다. 눈에 띄는 사고는 없지만, 방어선은 이미 낮아지고 있다. 이 변화는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2. 선의와 신뢰가 위험을 지연시키는 과정

 

운영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라는 결정이다. 연체가 발생했을 때, 내부 규정에 따르면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강제 절차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차주가 성실하게 사정을 설명하고, 구체적인 상환 계획을 제시하면 담당자는 단호함 대신 이해를 선택한다. 이 선택은 인간적으로 옳아 보인다. 문제는 그 선택이 구조적으로 관리되지 않을 때다.

연체 초기 대응은 회수 가능성을 크게 좌우한다. 초기에 조치를 취하면 담보 가치가 유지된 상태에서 협상력이 확보된다. 하지만 반복되는 유예는 차주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조금 더 늦어도 괜찮다”라는 인식이 형성되면 상환 우선순위는 자연스럽게 낮아진다. 결국 유연성은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조직 내부의 숫자는 왜곡되기 시작한다. 연체 기간은 관리되지만, 실제 회수 가능성은 떨어진다. 일부 상환을 통해 상태를 정상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반복되면, 장부상 건전성은 유지되지만 실질적인 위험은 누적된다. 문제는 이러한 조정이 반복되면서 내부 경보 체계가 둔감해진다는 점이다. 작은 이상 신호가 일상화되면 더 이상 경고로 인식되지 않는다.

또한 신뢰에 기반한 판단은 감정적 요소를 동반한다. 담당자는 차주의 약속을 믿고 싶어 한다. 이미 여러 차례 소통을 했고, 인간적 관계가 형성되었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금융 운영은 감정이 아니라 확률과 손실 한도 위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신뢰는 중요하지만, 신뢰가 실패했을 때 자동으로 작동하는 장치가 없다면 그것은 위험이 된다.

결국 선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손실을 키운 뒤에야 냉정한 판단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때는 이미 선택지가 줄어들어 있다. 유연성이 반복될수록 회복 가능성은 낮아진다.


3. 조직 문화가 서서히 방향을 틀 때

 

운영의 유연성이 일상화되면 조직 문화가 변한다. 기준은 존재하지만 절대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퍼진다. 실무자는 규정을 지키는 것보다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능력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이 변화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의사결정의 방향을 바꾼다.

신규 인력이 합류했을 때 이러한 문화는 더욱 선명해진다. 교육 과정에서는 엄격한 원칙을 배우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여러 건의 예외 사례를 접한다. 어느 것이 진짜 기준인지 혼란을 겪게 된다. 결국 그는 주변의 관행을 따르게 된다. 이때 조직의 실제 기준은 문서가 아니라 분위기가 된다.

분위기가 기준이 되면 판단은 일관성을 잃는다. 어떤 건은 엄격하게 처리되고, 어떤 건은 완화된다. 그 차이는 명확한 수치가 아니라 관계, 상황, 시점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장기적으로 위험 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동일한 유형의 자산이라도 조건이 제각각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내부 통제 부서는 점점 형식화된다. 검토 절차가 존재하더라도 이미 결론이 정해진 상태에서 확인만 하는 역할로 축소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통제는 방어 장치가 아니라 승인 절차로 전락한다. 손실이 발생했을 때 원인을 추적하려 해도, 어디에서 기준이 이동했는지 명확히 짚기 어렵다.

문화는 숫자보다 오래 간다. 한 번 자리 잡은 운영 방식은 위기가 오기 전까지 수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위기가 왔을 때는 이미 누적된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4. 문제를 확정하지 않는 선택이 만드는 누적 손실

 

손실은 단번에 발생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문제를 확정하지 않으려는 선택이 반복되면서 자란다. 연체를 구조조정으로 전환하고, 만기를 연장하고, 조건을 변경하는 과정은 단기적으로는 부담을 줄여준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위험이 축적된다.

문제를 확정하지 않으면 조직은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아직 손실이 아니라고, 회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회수 가능성은 시간과 함께 감소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담보 가치가 시장 상황에 영향을 받는 자산이라면 더욱 그렇다. 초기 대응을 미룰수록 회수율은 낮아진다.

이 과정에서 자금 흐름에도 왜곡이 생긴다. 예상 회수 일정이 지연되면 신규 투자 계획에도 차질이 발생한다. 그러나 장부상으로는 여전히 정상 자산으로 분류되어 있다면, 경영진은 실제 유동성 위험을 체감하지 못할 수 있다. 유연성이 만든 착시다.

결정적인 순간은 여러 건이 동시에 문제를 드러낼 때다. 개별적으로는 관리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건들이 한꺼번에 부실화되면, 조직은 갑작스러운 위기에 직면한다. 그러나 그 위기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확정을 미룬 선택이 만든 결과다.


5. 유연성을 구조 안에 두지 못한 조직의 한계

 

유연성은 필요하다. 시장은 예측 불가능하고, 모든 상황을 규정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유연성이 구조 밖에서 작동할 때 그것은 통제가 아니라 임의성이 된다. 그리고 임의성은 반복될수록 리스크를 확대한다.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서는 예외를 허용하더라도 그 범위와 조건이 명확해야 한다. 완화된 조건이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일정 수준을 넘으면 자동으로 경고가 작동해야 한다. 또한 예외 결정의 근거를 기록하고, 일정 기간 후 재검토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기적 성공에 속지 않는 태도다. 몇 건의 회수 성공이 기준 완화의 정당성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모두 포함한 장기 데이터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 유연성이 성과로 이어졌는지, 아니면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운영의 유연성이 손실로 전환되는 순간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구조의 미세한 이동이다. 기준이 조금씩 낮아지고, 문제를 확정하는 시점이 늦어지고, 책임이 흐려질 때 이미 전환은 시작된다. 조직이 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손실은 예외가 아니라 필연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