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16

말이 너무 논리적인 채무자를 경계하지 못한 이유 1. 논리적 화법이 신뢰로 오인되는 최초의 순간 채무자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를 ‘위험한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는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았고, 말을 아끼지도 않았다. 질문을 던지면 즉각적인 답이 돌아왔고, 그 답변은 구조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상황 설명에는 원인과 결과가 분명히 연결되어 있었고, 숫자와 일정이 빠지지 않았다. 실무자 입장에서 이런 유형의 사람은 상대하기가 편하다. 대화가 통하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없으며, 합리적인 협상이 가능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논리적인 말투를 ‘이성적인 태도’로 받아들였다. 이성적이라는 것은 통제 가능하다는 의미로 인식되기 쉽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자신의 상황을 과장하지 않.. 2026. 2. 5.
문서 정리를 미뤘다가 생긴 법적 공백 1. 바쁘다는 이유로 가장 중요한 걸 미뤘던 순간 실무를 하다 보면 문서 정리는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눈앞의 현금 흐름과 일정 관리가 더 급하기 때문이다. 연체 대응, 전화, 방문, 협상, 신규 건 검토까지 하루가 꽉 차 있다 보면, 이미 체결된 계약서나 약정서, 추가 합의 문서를 정리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린다. “나중에 한 번에 정리하면 되지”, “어차피 내용은 다 알고 있으니까”라는 생각이 반복된다. 나 역시 그랬다. 거래가 성사되는 순간까지는 유난히 꼼꼼했지만, 그 이후의 문서 정리는 늘 ‘시간 날 때’의 영역으로 남겨두었다. 계약서는 서랍에 넣어두고, 추가 합의는 메신저에 남겨두고, 변경된 조건은 머릿속에만 저장해 두는 식이었다. 그 순간에는 이 .. 2026. 2. 4.
공증을 받았는데도 회수가 안 된 사건 1. 공증이 주는 절대적 안정감이라는 착각 금전 거래를 하면서 공증을 받았다는 사실은 실무자에게 일종의 종착역처럼 느껴진다. 차용증만 있는 상태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제 문제 생기면 바로 집행하면 되지”, “소송 안 가도 된다”, “공증까지 했는데 안 갚을 수가 있나” 같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공증은 분명 강력한 수단이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공증을 **‘회수를 보장하는 장치’**로 오해한다는 데 있다. 이 사건 역시 그 오해에서 출발했다. 채무자는 처음부터 상환 능력이 아주 탄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일정한 현금 흐름은 있었고, 무엇보다 공증을 흔쾌히 받아주었다. 채무자 스스로 “공증까지 해도 된다”고 말했을 때, 나는 오히려 안도했다. 공증을 거부하지 않는 태도가 .. 2026. 2. 4.
연대보증인을 세워도 소용없었던 이유 1. 연대보증이라는 이름이 주는 착각 대출 계약을 체결할 때 연대보증인이 있다는 사실은 이상할 정도로 사람을 안심시킨다. 채무자가 부도가 나더라도 보증인이 대신 갚을 것이라는 구조, 법적으로도 ‘연대’라는 단어가 붙은 만큼 채무자와 동일한 책임을 진다는 설명. 이론적으로만 보면 연대보증은 채권자의 리스크를 극적으로 줄여주는 장치처럼 보인다. 그래서 많은 실무자들은 담보가 부족하거나 채무자의 재무 상태가 애매할 때, 연대보증인을 세우는 것으로 마지막 안전핀을 꽂았다고 느낀다. 나 역시 그랬다. 채무자의 사업은 불안정했지만, 연대보증인은 상대적으로 자산이 있고 사회적 지위도 분명한 사람이었다. 서류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연대보증 계약서에는 명확히 ‘채무 전액에 대해 연대하여 책임진다’라는 문구.. 2026. 2. 3.
계약서보다 무서운 ‘구두 합의’의 흔적 1. 계약서가 모든 걸 덮어줄 거라는 착각 금전 거래나 채권 관계에서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은 실무자에게 일종의 방패처럼 느껴진다. 종이에 적혀 있고, 서명이 있으며, 날짜와 조건이 명시되어 있다면 그 자체로 관계가 고정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특히 분쟁을 여러 번 겪어본 사람일수록 “구두로 하지 말고 계약서로 남겨라.”라는 말을 습관처럼 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이 사건에서도 계약서는 철저하게 준비했다. 조건은 명확했고, 문구도 간결했으며, 누가 봐도 문제 될 것 없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그 계약서가 모든 위험을 차단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너무 단순했다. 계약서는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계약서가 **‘관계의 전부’**를 담고 있다고 믿는 순간부터 위험은 시작된다. 실제 거래 현장은 종이 위보.. 2026. 2. 3.
차용증 한 줄이 없어서 패소한 사례 1. 신뢰와 관행이 문서를 밀어낸 출발점 이 거래의 시작은 전형적인 “문서 없이도 굴러가던 관계”였다. 상대방과는 이미 여러 차례 자금 거래가 있었고, 그동안 큰 문제는 없었다. 이자는 제때 들어왔고, 원금도 약속한 시점에 정산됐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실무자는 무의식적으로 거래를 ‘사람 기준’으로 판단하게 된다. 문서는 절차가 아니라 옵션처럼 느껴지고, 신뢰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자금 요청은 급박했고, 상대방은 구체적인 사용처와 상환 계획을 설명했다. 나는 그 설명을 듣고 판단했다. 이전 거래에서도 문제없었고, 계좌 이체 기록은 남는다. 굳이 차용증까지 요구하면 관계가 어색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차용증은 “다음에 정리하자”라는 말과 함께 미뤄졌다. 이 선택이 .. 2026.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