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희귀질환은 자주 오진되는가?
의학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희귀질환 환자들은 정확한 진단을 받기까지 평균 3~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희귀질환은 각 질환의 유병률이 극히 낮고, 증상이 비특이적이며, 해당 질환에 대한 의료진의 인식과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증상이 흔한 질환과 유사하게 나타날 경우, 오진은 더욱 쉽게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지속적인 복통은 소화기 질환으로, 발열과 피로는 감기나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오인되며, 심지어 정신과적 증상으로 오해되어 ‘심리적 문제’로 진단받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또한, 희귀질환은 한 가지 증상으로만 나타나지 않고 다양한 장기에 걸쳐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진료과 간 연계 부족도 오진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이로 인해 일부 환자들은 다수의 병원을 전전하거나, 수많은 검사를 반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오진은 단순한 의료 실수로 끝나지 않습니다. 환자에게는 치료 시기를 놓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불필요한 약물 치료나 심리적 낙인, 비용 부담 등 삶의 전반에 걸쳐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기에 희귀질환에 대한 의료진의 경계심과 사회적 인식의 확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진 가능성이 높은 희귀질환 ① 파브리병
**파브리병(Fabry Disease)**은 X-연관 유전 질환으로, 알파-갈락토시다제 A 효소 결핍으로 인해 특정 지방이 체내에 축적되는 리소좀 축적질환입니다. 이 질환은 증상이 매우 다양하고 흔한 질환들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오진 가능성이 매우 높은 희귀질환 중 하나입니다.
대표적인 증상은 **사지 말단의 극심한 신경통(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과 함께, 체온 상승 시 통증 악화, 소화 불량, 피부에 자반처럼 보이는 혈관각화종(angiokeratoma) 등이 있으며, 청소년기부터 신장 기능 저하나 심장비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증상들은 신경통, 위장장애, 피부질환, 신장질환 등 일반 질환으로 쉽게 오인됩니다.
특히 여성 환자는 남성보다 증상이 경미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더욱 진단이 늦어지거나 정상으로 간주하여 오랜 시간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파브리병은 효소대체요법과 기질감소요법으로 진행을 조절할 수 있으므로, 조기 진단이 매우 중요하며, 가족력이 있거나 특이 증상이 반복된다면 유전자 검사를 고려해야 합니다.
오진 가능성이 높은 희귀질환 ② 루푸스, ③ 헌팅턴병
두 번째로 오진율이 높은 질환은 **전신홍반루푸스(SLE, Systemic Lupus Erythematosus)**입니다. 루푸스는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으로, 체내 면역계가 자신의 세포를 공격하는 병입니다. 초기 증상으로 피로감, 발열, 관절통, 피부 발진 등이 나타나며, 그 양상이 감기, 우울증, 류마티즘 등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진단이 어려워집니다.
루푸스는 특히 여성에게 흔하며, 스트레스와 연관된 증상이 많아 정신과 질환으로 오인되는 일이 잦습니다. 피부 발진, 특히 나비모양 홍반, 백혈구 감소, 단백뇨, 항핵항체(ANA) 양성 반응 등이 단서가 될 수 있으며, 정밀한 혈액 검사와 면역학적 진단 기준을 적용해 확인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헌팅턴병(Huntington’s Disease)**입니다. 이 유전성 퇴행성 신경질환은 30~50대에 발병하여 성격 변화, 충동 조절 장애, 운동 이상, 기억력 저하 등이 서서히 나타납니다. 초기에 우울증이나 조현병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 정신과 질환으로 오진되기 쉽습니다. 실제로 초기 헌팅턴병 환자의 약 30~40%는 우울증, 불안장애, 충동장애 진단을 먼저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질환은 HTT 유전자 내 CAG 반복 서열의 확장으로 진단이 가능하며, 증상이 시작되기 전에도 예측 검사로 유전자 이상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조기 유전자 검사를 통해 정신증상과 운동증상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진 가능성이 높은 희귀질환 ④ 니만-피크병, ⑤ 무통각증
네 번째는 **니만-피크병(Niemann-Pick Disease)**으로, 리소좀 내 지질 대사에 이상이 생겨 세포 내 스핑고미엘린이 축적되는 질환입니다. 특히 Type C형은 신경계 퇴행과 관련이 깊으며, 소아기 또는 청소년기에 학습 능력 저하, 운동 실조, 근긴장 이상, 간비대 등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증상들은 ADHD, 발달장애, 소화기 질환 등으로 오인되기 쉬우며, MRI 상 특이 소견이 없으면 진단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니만-피크병은 혈액 검사, 피부 섬유아세포 검사, 유전자 검사로 확진 가능하며, 현재는 미글루스타트(Miglustat) 등의 치료제와 대증요법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진단의 시기가 진행성 뇌손상을 결정짓는 요인이 되므로, 소아기에 비정상적인 발달 퇴행이 보이면 반드시 희귀질환을 의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질환은 **무통각증(Congenital Insensitivity to Pain)**입니다. 이 질환은 태어날 때부터 신경계가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는 유전 질환으로, 환자는 화상, 골절, 감염이 있어도 통증을 느끼지 못해 스스로 보호 행동을 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이가 고통을 표현하지 않고 자해 행동을 반복하면, 일부 부모나 교사는 이를 주의력 부족이나 발달장애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무통각증은 SCN9A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통증 신호 전달이 차단되며, 치명적인 외상이나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조기 진단이 필수입니다. 특히 구강 자해, 반복적인 외상, 뼈 변형이 있을 경우, 단순한 행동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반드시 희귀 신경질환 감별 진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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