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질병

희귀의약품 개발의 윤리, 특허, 가격 삼각 딜레마

zidan05 2025. 4. 28. 09:07

희귀의약품 개발의 필연성과 사회적 책임

 

**희귀의약품(Orphan Drugs)**은 인구 대비 발병률이 매우 낮은 질환, 즉 희귀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의약품을 의미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으로는 대략 2,000명 중 1명 이하의 환자에게 발생하는 질병을 대상으로 하며, 실제로 전체 희귀질환은 7,000종이 넘고, 이로 인해 고통받는 환자는 전 세계적으로 수억 명에 이릅니다.

하지만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은 경제적 수익성이 낮고 실패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쉬운 영역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는 **희귀의약품법(Orphan Drug Act)**과 같은 정책을 통해 세제 혜택, 독점권 부여, 임상시험 지원 등을 제공하여 개발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희귀질환 환자들은 기존의 시장 메커니즘 안에서는 구조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희귀의약품 개발은 단순히 산업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의 영역으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은 적절한 건강 관리의 권리를 가진다'**는 보편적 인권 원칙에도 부합합니다.

따라서 희귀의약품 개발은 본질적으로 윤리적 책임과 직결되며, 경제 논리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공공선(Public Good)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특허권과 가격 설정이라는 또 다른 난제가 파생되며, 이로 인해 '윤리–특허–가격' 삼각 딜레마가 발생하게 됩니다.


특허권 보호와 독점기간의 윤리적 충돌

희귀의약품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부여되는 특허권과 시장 독점권은 제약회사가 막대한 연구개발비용을 회수하고, 실패 위험을 감수할 수 있도록 하는 필수적인 인센티브입니다. 특히 희귀의약품법 하에서는 기존의 특허 기간 외에도 7~10년간 추가적인 시장 독점권이 보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독점이 치료제의 가격을 급격히 상승시키고, 접근성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한 가지 희귀질환 치료제의 연간 치료비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사례가 드물지 않으며, 이는 건강보험 체계에도 막대한 부담을 가중시킵니다.

특허권의 기본 목적은 기술 혁신을 장려하는 동시에 일정 기간 이후에는 공공의 이익으로 환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희귀의약품에서는 환자 수가 적기 때문에, 특허 만료 이후에도 대체제(제네릭) 출현 가능성이 매우 낮고, 실질적인 독점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됩니다.

윤리적으로 볼 때, 생명과 직결된 필수 치료제의 독점은 허용 가능한가, 기업 이윤과 환자 생명권 중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하는가 하는 딜레마가 생깁니다. 또한 최근에는 **'희귀질환에 대한 특허권은 사회 전체의 공적 자산'**이라는 시각이 대두되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특허권 제한 및 강제실시 조항까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결국 특허 보호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환자의 치료 접근을 심각하게 저해하거나 생명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정교한 규제와 균형 정책이 필수적입니다.

 

희귀의약품 가격 책정의 현실과 윤리적 문제

희귀의약품 가격은 개발비 회수, 시장 규모, 보험 급여 여부, 경쟁 약물 유무 등 복합적 요인에 의해 책정됩니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환자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는 사실입니다. 환자군이 작기 때문에, 기업은 단위당 약값을 높게 책정해야 개발비를 회수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희귀의약품은 일반 의약품에 비해 10배, 많게는 100배 이상 높은 가격을 형성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실제로 일부 유전자 치료제는 1회 투여에 수십억 원의 비용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윤리적 문제가 발생합니다:

-생명을 연장하거나 고통을 경감할 수 있는 치료가 과도한 가격으로 인해 사실상 배제된다면, 이는 생명권 침해에 해당하는가?

-고가 치료를 위해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어느 수준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희귀질환 치료에 쓰이는 공공재원(건강보험, 세금 등)을 어떻게 배분하는 것이 공평한가?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비용-효과 분석(Cost-Effectiveness Analysis)을 통해 약가를 평가하지만, 희귀의약품의 경우 환자 수가 적어 경제적 효율성만으로 생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일부 국가는 **"사회적 가치 기반 약가 결정 모델"**을 도입하여, 단순 비용 대비 효과가 아닌, 삶의 질 개선, 사회 통합, 가족 부담 감소 등을 함께 고려한 평가 방식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델도 적용이 쉽지 않아, 여전히 고가 희귀의약품의 가격 문제는 윤리적·재정적 긴장을 지속적으로 야기하고 있습니다.

희귀의약품 개발의 윤리, 특허, 가격 삼각 딜레마


윤리-특허-가격 삼각 딜레마의 해법 모색

 

희귀의약품 개발 과정에서 나타나는 윤리, 특허, 가격의 삼각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차원의 다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첫째,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역할을 재정의해야 합니다. 정부는 단순히 규제자가 아니라, 초기 연구개발 투자, 임상시험 인프라 제공 등 적극적 참여자로서 공공재(공익) 개발을 주도해야 하며, 민간기업은 이 과정에서 공공성과 상업성을 균형 있게 추구해야 합니다.

둘째, 약가 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사회적 참여를 확대해야 합니다. 희귀의약품 가격을 결정할 때, 단순히 기업과 정부 간 협상에 맡기기보다는 환자단체, 윤리학자, 경제학자, 사회복지 전문가 등이 함께 참여하여 다원적 합의 기반의 약가 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셋째, 특허 독점 기간 동안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합니다. 일정 매출 이상 발생 시 사회 환원 기금 납부, 저소득국가 환자 무상 제공 프로그램 운영 등을 의무화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특허의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책임 간 균형을 이룰 수 있습니다.

넷째, 글로벌 차원에서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공동개발 및 공동구매 모델을 확대해야 합니다. WHO, UN, 글로벌 NGO들이 참여하여 다국적 협력체를 구성하고, 특히 저개발국가 환자에게 치료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처럼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위해서는, '희귀의약품은 상품이면서도 동시에 공공재다'라는 인식을 전제로 하여,
경제 논리와 생명 윤리가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