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질병

희귀질환 등록제도의 한계와 개선 방향

zidan05 2025. 4. 29. 09:38

희귀질환 등록제도의 필요성과 현재 운영 체계

 

희귀질환 등록제도(Rare Disease Registry)는 특정 질환을 가진 환자를 체계적으로 등록하고, 이들의 질병 이력, 치료 경과, 사회적 지원 상황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의료 관리의 연속성, 연구 촉진, 정책 수립의 기초 자료로 활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여러 국가들은 희귀질환 등록제를 다음과 같은 이유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희귀질환 환자 규모 및 질환별 유병률 파악

-치료 접근성, 의료 서비스 제공 현황 분석

-신약 개발 및 임상시험 설계 지원

-정책적 지원(의료비 지원, 복지 서비스) 기반 자료 확보

한국에서는 2001년부터 '희귀·난치성 질환자 산정특례 등록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질병관리청을 중심으로 희귀질환 헬프라인과 같은 정보 제공 및 상담 연계 기능이 강화되었습니다.
또한 일부 대형 병원에서는 자체적인 희귀질환 등록 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국가 희귀질환 관리 사업단도 별도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의 희귀질환 등록체계는 의료적 데이터 중심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등록 절차, 정보 갱신, 질 관리(Quality Control) 측면에서 여러 한계점이 존재합니다.


희귀질환 등록제도의 구조적 한계와 문제점

한국 희귀질환 등록제도의 가장 두드러진 문제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등록률의 한계: 산정특례 등록 대상은 100여 질환에 국한되어 있으며, 전체 희귀질환(약 7000종) 대비 극히 일부에만 등록 기회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상당수 희귀질환 환자들은 제도 밖에 방치됩니다.

-데이터의 불완전성: 등록 과정이 의료기관 진단서 제출에 의존하기 때문에, 진단 오류, 환자 이탈, 업데이트 부재 등으로 데이터 정확성과 최신성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등록 이후 연속성 부족: 환자가 등록된 후에도 질병 진행 상황, 치료 변화, 사망 등 생애주기별 변동사항이 체계적으로 반영되지 않아, 정적(Static) 데이터베이스로 머무르고 있습니다.

-비등록 환자에 대한 지원 부재: 등록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희귀질환 환자들은 의료비 지원, 복지 혜택 등에서 제외되어 이중적 차별을 경험합니다.

-환자 중심성이 결여된 구조: 등록제도는 주로 의료기관과 행정기관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환자 본인이 자신의 정보 관리 및 활용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미흡합니다.

결과적으로 현재 등록제도는 진정한 의미의 희귀질환 관리 플랫폼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책 설계자와 의료기관의 편의성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희귀질환 등록제도의 한계와 개선 방향


해외 사례 비교를 통한 시사점

 

해외 주요 국가들은 희귀질환 등록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혁신적 모델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EU - European Reference Networks (ERNs)
유럽연합은 국경을 넘어 희귀질환 환자의 정보를 통합 관리하기 위해 ERN을 설립했습니다. 질병군별 네트워크가 구성되어 전문병원 간 데이터 공유, 공동 임상지침 개발, 원격 진료 시스템을 연계하고 있습니다.

미국 - Rare Diseases Clinical Research Network (RDCRN)
미국 국립희귀질환연구소(NCATS)는 희귀질환 환자 등록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면서, 환자 자발적 참여 기반(Patient-Reported Outcomes, PRO)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환자가 직접 질병 진행 경과, 치료 경험, 삶의 질 지표를 업데이트하는 구조입니다.

이들 사례를 통해 도출할 수 있는 핵심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질병군별로 특화된 등록체계 구축 필요성

-등록 데이터의 실시간 갱신 및 다기관 연동

-환자 주도형 데이터 입력 구조 확립

-임상시험, 치료제 개발, 정책 연계까지 일관된 생태계 조성

한국도 단순 등록을 넘어, 환자와 의료기관, 정부가 모두 참여하는 동적(Dynamic) 통합 관리체계로 전환해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한국형 희귀질환 등록제도 개선 방향

한국형 희귀질환 등록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적 방향이 필요합니다.

-포괄적 등록 대상을 확대: 특정 100여 질환 중심이 아니라, 희귀질환 전체를 포괄할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하고, 미진단 환자까지 포용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환자 참여형 플랫폼 구축: 환자가 자신의 건강정보를 주기적으로 직접 업데이트할 수 있는 모바일 기반 시스템을 도입하고, 보호자, 환우회 등과의 연계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다기관, 다원적 데이터 연계 강화: 병원, 보험공단, 복지부, 연구기관 데이터베이스를 상호 연동시켜, 하나의 '통합 희귀질환 데이터 허브'를 구축해야 합니다.

-생애주기 맞춤형 관리 도입: 환자가 어린이일 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질병 진행 상황, 치료 변화, 사회적 필요(교육, 직업, 돌봄)를 통합 관리하는 생애주기 기반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프라이버시 보호 및 데이터 거버넌스 강화: 환자 개인정보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면서, 연구 및 공공 정책 목적의 활용에 대해 환자 동의를 기반으로 관리하는 투명한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를 설계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등록제도는 단순 통계 수집이 아니라, 환자 중심의 생애 설계 도구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등록제도 혁신을 통한 희귀질환 정책의 미래

등록제도가 혁신적으로 재편되면 희귀질환 정책 전반에 다음과 같은 긍정적 변화가 기대됩니다:

-맞춤형 의료 실현: 환자 데이터 기반으로 개인별 치료 전략, 유전자 맞춤형 신약 개발이 촉진됩니다.

-환자 권리 강화: 정보 접근성 보장, 자기결정권 확대,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활용 등 환자의 삶의 질이 향상됩니다.

-정책 투명성 제고: 희귀질환 환자 수, 서비스 이용 현황, 지원 필요성이 데이터에 근거해 객관적으로 평가되어, 정책 설계와 집행의 투명성이 강화됩니다.

-지속 가능한 복지 체계 구축: 제한된 자원을 가장 필요한 환자에게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됩니다.

희귀질환 등록제도는 단순한 환자 목록 작성이 아니라,
질병과 인간 삶의 전 주기를 품어내는 데이터 생태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정부, 의료계, 환자단체, IT 업계가 함께 협력하여,
'포괄성, 참여성, 지속성'을 갖춘 한국형 희귀질환 등록 플랫폼을 구축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