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질병

루게릭병(ALS), 단순한 근육질환이 아니다

zidan05 2025. 4. 6. 18:25

루게릭병(ALS)의 본질: 근육 아닌 신경의 문제

 

루게릭병으로 잘 알려진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은 단순히 근육의 문제가 아닌, 신경계 자체가 퇴행하는 희귀 난치병입니다. ALS는 뇌와 척수에 위치한 상위 및 하위 운동신경세포가 점진적으로 파괴되면서 신경 자극이 근육으로 전달되지 못하게 되고, 결국 근육이 위축되어 마비되는 진행성 질환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10만 명당 약 1~2명이 발병하는 희귀질환으로, 국내에서도 매년 약 500명 이상이 새로 진단받고 있습니다.

초기 증상은 손이나 발의 힘이 빠지거나, 말하기가 어눌해지고 삼키기 어려운 등의 국소적인 근력 저하로 시작합니다. 이후 점차 전신으로 진행되어 호흡근의 마비에 이르면 인공호흡기를 필요로 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루게릭병을 근육 질환으로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신경세포의 퇴행과 사멸이 근본 원인이며, 근육 약화는 그에 따른 결과입니다.

ALS는 그 자체로도 심각하지만, 인지 기능 저하나 감정 조절 문제와 같은 뇌 기능의 변화도 동반할 수 있어 단순히 신체 기능만 영향을 받는 질환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일부 환자에서 **전측두엽 치매(FTD)**와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이 동반된다는 연구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는 ALS가 단일 질환이 아닌 복합적인 뇌질환 스펙트럼의 일환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ALS의 원인과 유전적 연관성

 

ALS의 약 90%는 **산발성(sporadic)**으로 발생하며, 뚜렷한 원인 없이 발병합니다. 그러나 약 10%는 가족성 ALS로,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유전자는 **SOD1(Superoxide Dismutase 1)**로,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으면 활성산소 제거 기능에 문제가 생기고, 신경세포가 산화 스트레스로 손상됩니다.

또한 C9orf72라는 유전자의 반복 확장 변이도 최근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유전자 이상은 **ALS와 전측두엽 치매(FTD)**를 동시에 일으키는 대표적인 원인으로, 이중 표현형으로 발현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입니다. 그 외에도 TDP-43, FUS 등의 단백질 병증과 관련된 유전자가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으며, 이는 ALS가 단순한 유전 질환을 넘어서 세포 수준에서 단백질 대사 이상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ALS는 유전적 소인이 없는 사람에게도 환경적, 생활 습관적 요인으로 인해 발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속적인 중금속 노출, 과도한 운동, 군 복무 이력, 바이러스 감염, 흡연 등이 위험요인으로 거론되고 있으나, 아직 명확한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유전과 환경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에는 학계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루게릭병(ALS), 단순한 근육질환이 아니다



ALS 진단과 치료의 현실


ALS의 진단은 매우 까다롭습니다. 뚜렷한 진단 바이오마커가 없기 때문에 다른 질환을 배제하는 방식의 진단이 주를 이룹니다. 의심되는 경우 근전도(EMG), 신경전도검사(NCS), 뇌척수액 검사 등을 통해 근육과 신경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이 과정은 몇 달에서 수년이 걸릴 수 있으며, 일부는 다발성경화증이나 근육병증으로 오진되기도 합니다.

치료 역시 제한적입니다. 현재까지 승인된 ALS 치료제는 **리루졸(Riluzole)**과 에다라본(Edaravone) 두 가지입니다. 리루졸은 글루탐산 신경독성을 억제해 신경세포 손상을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고, 에다라본은 항산화 작용을 통해 신경 보호를 도모합니다. 그러나 두 약물 모두 ALS의 진행을 근본적으로 멈추지는 못하며, 평균 생존 기간을 수 개월 연장하는 정도의 효과만 입증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호흡 보조기, 영양 관리, 물리치료, 심리 상담 등 다학제적 관리가 필수적입니다. 특히, 음식물 섭취가 어려운 경우 위루관 설치를 통해 영양 결핍을 방지해야 하며, 호흡 근육 마비가 진행되면 **비침습적 인공호흡기(NIV)**를 통해 호흡을 보조해야 합니다. 치료보다는 삶의 질 유지와 기능 보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동시에 환자와 가족에게 꼭 필요한 의료적 지원입니다.

 

새로운 치료 가능성과 사회적 인식의 변화

 

최근 ALS에 대한 치료 기술의 혁신이 빠르게 진행 중입니다. 특히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한 CRISPR-Cas9 기반 치료법과, 환자 유래 줄기세포(iPSC)를 이용한 세포 치료제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특정 유전자 변이를 가진 환자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유전자 치료제가 임상에 진입하고 있으며, 일부는 FDA의 희귀질환 신속 승인 절차를 통해 조기 상용화가 기대되고 있습니다.

또한, ALS는 전 세계적인 유명인들의 사례를 통해 널리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ALS 진단 후에도 오랜 시간 활동하며, ALS 환자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루게릭병 환우들을 위한 사회적 기부, 환자 쉼터 조성, 인식 개선 캠페인이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ALS는 대중에게 낯설고, 환자나 가족에게는 치료법 없는 절망의 병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지원, 그리고 지속적인 연구 투자 확대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희귀질환에 대한 사회 전반의 공감과 배려가 쌓일 때, ALS 환자들도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