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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질병

유전자 편집과 희귀질환: 치료냐 윤리적 금기냐

by zidan05 2025. 5. 3.

유전자 편집 기술의 발전: CRISPR 시대의 개막

 

최근 십여 년간 유전자 편집 기술은 생명과학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온 분야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 중심에는 CRISPR-Cas9 기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기술은 특정 DNA 염기서열을 정밀하게 찾아 자르고 교정할 수 있어, 이전까지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유전질환의 근본적 치료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낫모양 적혈구병, 베타 지중해빈혈 등 단일 유전자 질환에서는 CRISPR의 임상시험이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국내에서도 희귀 신경계 질환과 대사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프리 임상 연구들이 확대되고 있으며, 연구기관과 병원들이 협업하여 새로운 치료 전략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 발전의 속도에 비해 안정성 확보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으며, 오프 타깃(원치 않는 유전자 변이) 문제와 장기적 영향에 대한 추가 검증이 필수적입니다.

 

희귀질환 환자들의 기대: 근본 치료의 실낱같은 희망

 

대부분의 희귀질환 환자들은 현재까지 증상 완화나 보조적 치료에만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유전자 편집은 기존 치료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게임 체인저’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편집을 통해 질병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교정할 수 있다는 점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특히 치료 옵션이 거의 없는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조기 임상시험 참여를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으며, 환자 단체들은 규제 완화와 연구 촉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대감만큼이나 불안감도 큽니다. 편집된 유전자가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 장기적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 등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환자들은 “위험이 있더라도 치료의 기회를 원한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도, 안전성 검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함께 내고 있습니다.


윤리적 금기와 국제 규범: 인간 게놈 편집의 경계선

 

유전자 편집이 불러오는 윤리적 문제는 단순히 치료를 넘어 인간의 본질을 건드리는 논란으로 확장됩니다. 특히 생식세포 유전자 편집은 수정란 단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그 유전적 변화가 후세대까지 이어집니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인간 개조’(Human Enhancement)**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발표한 가이드라인에서 생식세포 유전자 편집의 임상 적용을 명확히 금지했고, 한국 역시 생명윤리법을 통해 엄격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반면 체세포 유전자 편집은 치료 목적에 한해 허용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치료와 강화의 경계가 점차 흐릿해지면서 윤리적 논쟁은 지속될 전망입니다. 일부 전문가는 "기술적 가능성이 윤리적 타당성을 대체할 수 없다"고 경고하며, 사회적 합의와 지속적인 윤리 검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편집과 희귀질환: 치료냐 윤리적 금기냐

 

법적 쟁점과 규제 체계: 한국의 현주소와 개선 필요성

 

한국의 유전자 편집 규제 체계는 국제 기준에 부합할 정도로 엄격한 법적 장치를 두고 있습니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생식세포 유전자 편집을 전면 금지하며, 체세포 유전자 편집도 연구 목적으로만 제한적으로 허용됩니다. 이처럼 규제가 강력한 이유는 기술 오남용에 대한 우려 때문이지만, 반면에 치료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은 희귀질환 치료를 위한 체세포 유전자 편집 임상시험을 활발히 진행 중이며, 영국 등 유럽 국가들도 규제 완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국내 환자들이 해외로 의료 원정을 떠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특히 희귀질환과 같이 대안 치료법이 전무한 분야에서는 조건부 허가제나 특례 허용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혁신치료제 지정( Breakthrough Therapy Designation )'처럼,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신속하게 임상시험을 승인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법적 체계가 빠르게 변하는 기술을 따라잡으려면 동적 규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 시스템은 기술 발전과 윤리적 기준이 변할 때마다 실시간으로 규제를 재검토할 수 있어, 현재의 경직된 법 체계보다 유연한 대응이 가능합니다.

또한, 현재 한국의 윤리위원회(IRB) 심사 절차는 지나치게 길고 복잡해 연구자들의 진입 장벽이 높은 편입니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절차적 합리화'와 '윤리적 신속 심사팀' 도입 등을 요청하고 있으며, 이는 연구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과제로 꼽힙니다. 결국 법적 틀을 개선하는 과정에서는 과학자, 윤리학자, 법조계, 환자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입니다.

 


미래 전망: 기술 발전과 사회적 합의의 조화

 

유전자 편집 기술은 앞으로 더욱 정교해질 것입니다. 기존의 CRISPR-Cas9을 뛰어넘어 프라임 에디팅(Prime Editing), 베이스 에디팅(Base Editing) 같은 차세대 기술이 등장하면서 부작용은 줄고, 정밀도는 높아지고 있습니다. 프라임 에디팅은 DNA의 한 글자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작은 조각까지 교정할 수 있어 희귀질환 치료에 매우 유용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AI)과 결합해 오프 타깃 문제를 사전에 예측하고 제거할 수 있는 기술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발전은 기술적 장애물을 해소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합의와 윤리적 프레임이 함께 발전해야만 유전자 편집 기술은 안전하게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최근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동적 동의 시스템이 주목받고 있는데, 이는 환자들이 데이터 제공과 치료 참여 여부를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해, 윤리적 신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줍니다. 또 하나 중요한 미래 전망은 국제적 표준화입니다. 국가마다 윤리와 규제가 다르면 환자들은 혼란을 겪고 치료 기회의 형평성도 깨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제 공동연구와 법적 협약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특히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의료 인프라와 IT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변화에 선도적으로 대응할 잠재력이 큽니다. 다만 지금처럼 보수적인 법적 틀에만 머문다면 국제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이 큽니다. 앞으로 유전자 편집 기술의 발전 방향은 단순히 '치료냐 금기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어떤 절차와 합의를 통해 안전하고 윤리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진화해야 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희귀질환 환자들이 보다 안전하고 공정한 치료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