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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대부업·NPL 실무자의 실패 기록 아카이브

성실해 보이던 대표가 연락을 끊기까지

by zidan05 2026. 2. 5.

1. 첫 미팅에서 느꼈던 ‘안도감’이라는 착각

 

그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솔직히 마음이 놓였다. 말수가 적었고, 질문에는 짧지만 정확하게 답했다. 불필요한 미사여구도 없었고, “잘될 겁니다” 같은 공허한 낙관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상황을 다소 비관적으로 설명했다. 매출이 줄어든 이유, 거래처가 이탈한 배경, 고정비 구조의 문제까지 스스로 먼저 꺼냈다. 보통 위험한 대표들은 문제를 축소하거나 책임을 회피한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모든 이야기를 자기 책임으로 끌어안고 있었다.

나는 그 태도를 ‘성실함’으로 해석했다. 성실하다는 인상은 실무자에게 가장 강력한 마취제다. 이 사람은 도망치지 않을 것 같고, 대화를 피하지 않을 것 같고, 최소한 상황을 공유할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준다. 그 기대는 곧 경계심을 낮춘다. 나는 그 대표에게서 “나쁜 사람”의 냄새를 맡지 못했다. 아니, 냄새를 맡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서류도 빠르게 준비해 왔다. 재무제표, 거래 내역, 세금 납부 기록까지 빠짐없이 제출했다. 형식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숨기려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정직함’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정직함이 아니라 이미 정리된 스토리였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만 정확히 준비해 온 것이었다.

그때 나는 중요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이 자료가 마지막으로 업데이트된 시점은 언제인가”, “이 수치 이후에 발생한 변동은 없는가” 같은 질문들이다. 성실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 대표를 검증 대상이 아니라 협력 대상으로 대했다. 이 순간부터 이미 방향은 잘못 잡혔다.


2. 약속을 지키는 모습이 만든 위험한 신뢰

 

초기 몇 달 동안 그는 약속을 지켰다. 이자는 하루도 늦지 않았고, 보고하기로 한 날짜에 정확히 연락이 왔다. 매출이 줄어들었다고 말하면서도, 상황 공유는 성실하게 이어졌다. 그는 늘 같은 톤이었다. 급해지지도, 감정적으로 변하지도 않았다. 이런 사람을 의심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이 정도면 괜찮은 차주다”라는 평가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문제는 이 ‘괜찮다’라는 판단이 얼마나 위험한가다. 실무에서 가장 위험한 차주는 처음부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다. 처음에는 성실하게 이행하다가, 신뢰가 쌓인 이후에 구조적으로 무너지는 사람이다. 그는 바로 그런 유형이었다.

소액 상환은 나를 더욱 안심시켰다. 원금이 아니라 이자만 꾸준히 들어오는 구조는, 실무자에게 일종의 착시를 준다. 돈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위험 신호를 희석시킨다. 나는 그 돈이 ‘지금 벌어서 낸 돈인지’, ‘다른 데서 돌려막은 돈인지’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다. 성실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나는 관리 강도를 낮췄다. 체크 주기는 길어졌고, 추가 자료 요청도 줄어들었다. 관계는 점점 ‘관리’가 아니라 ‘신뢰’로 이동했다. 그리고 신뢰는 문서가 아니라 감정 위에 쌓인다. 감정 위에 쌓인 구조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3. 변화를 감지했지만 ‘설마’로 넘긴 순간들

 

처음 이상함을 느꼈던 건 아주 사소한 변화였다. 연락이 늦어졌다. 예전에는 오전 중에 오던 답장이 오후로 밀렸고, 오후에 오던 연락이 다음 날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답을 했다. 그리고 그 답은 여전히 논리적이었다. “이번 주는 결제 일정이 꼬였다”, “거래처 정산이 하루 밀렸다” 같은 설명들이 이어졌다.

나는 그 설명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이미 그를 ‘성실한 대표’로 인식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한 번 형성한 인식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기존 인식을 유지하기 위해 정보를 해석한다. 나는 그의 지연을 위험 신호가 아니라 일시적 변수로 해석했다.

그 다음은 보고의 질이 떨어졌다. 이전에는 자발적으로 공유하던 내용들이 줄어들었고, 질문을 해야만 답이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답을 피하지 않았다. 이 단계에서 많은 실무자들이 착각한다. “연락만 되면 괜찮다”라고. 나 역시 그랬다. 연락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안도감을 주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시점이 마지막 기회였다. 이때 강하게 관리 모드로 전환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미 쌓인 신뢰가 내 손을 묶고 있었다. ‘지금 압박하면 관계가 깨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 판단이 결국 모든 것을 망쳤다.

4. 연락이 끊겼을 때 비로소 보이는 구조

 

연락이 완전히 끊긴 날, 나는 이상할 정도로 담담했다. 어딘가에서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담담함은 곧 공포로 바뀌었다. 전화는 받지 않았고, 메시지는 읽지 않았다. 이메일도 반송되지 않았지만 답이 없었다. 그제야 나는 자료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보였다. 내가 보지 않았던 것들. 매출 구조의 취약성, 특정 거래처에 대한 과도한 의존, 이미 발생해 있던 미수금, 선순위 채권의 존재. 모든 것이 자료 안에 있었다. 다만 나는 그것을 연결해서 보지 않았을 뿐이다.

연락이 끊긴 이후에 하는 분석은 항상 늦다. 그 분석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패를 설명하기 위한 작업이 된다. 나는 그 대표의 성실함이 아니라, 나의 방심이 이 상황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5. 성실함은 평가 기준이 아니라 착시다

 

이 사건 이후, 나는 ‘성실함’이라는 단어를 실무 기준에서 지웠다. 성실해 보이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성실함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실해 보일수록, 구조를 더 냉정하게 봐야 한다. 말투, 태도, 인상은 리스크를 줄여주지 않는다.

지금 나는 대표를 볼 때, 이렇게 판단한다.
얼마나 성실해 보이는지가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선택을 해왔는가,
불리한 상황에서도 기록을 남겼는가,
시간이 지나도 구조가 유지되는가.

이 글은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다. 나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한 기록이다. 그리고 같은 길을 걷는 실무자들에게 남기는 경고다. 성실해 보이던 대표가 연락을 끊기기까지, 그 과정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합리적이며, 설득력 있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