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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대부업·NPL 실무자의 실패 기록 아카이브

공증을 받았는데도 회수가 안 된 사건

by zidan05 2026. 2. 4.

1. 공증이 주는 절대적 안정감이라는 착각

 

금전 거래를 하면서 공증을 받았다는 사실은 실무자에게 일종의 종착역처럼 느껴진다. 차용증만 있는 상태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제 문제 생기면 바로 집행하면 되지”, “소송 안 가도 된다”, “공증까지 했는데 안 갚을 수가 있나” 같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공증은 분명 강력한 수단이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공증을 **‘회수를 보장하는 장치’**로 오해한다는 데 있다.

이 사건 역시 그 오해에서 출발했다. 채무자는 처음부터 상환 능력이 아주 탄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일정한 현금 흐름은 있었고, 무엇보다 공증을 흔쾌히 받아주었다. 채무자 스스로 “공증까지 해도 된다”고 말했을 때, 나는 오히려 안도했다. 공증을 거부하지 않는 태도가 신뢰로 보였고, 그것이 판단의 마지막 퍼즐처럼 느껴졌다.

공증 절차는 깔끔했다. 금전소비대차계약 공정증서, 집행력 부여 문구, 변제기 명시. 공증 사무소에서 설명도 들었고, 서류상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이 거래를 **‘관리 대상’이 아닌 ‘종결된 리스크’**로 분류해 버렸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훗날 가장 뼈아픈 실수가 된다.


2. 집행권원이 있어도 바로 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연체가 발생했을 때 나는 비교적 침착했다. 이미 공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촉을 길게 끌지 않았고, 감정적인 소통도 최소화했다. “정해진 절차대로 가면 된다”는 생각이 오히려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강제집행을 준비하면서, 공증이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집행권원이 있다고 해서 바로 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먼저 채무자의 재산을 특정해야 하고, 그 재산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계좌 압류를 시도했지만 이미 잔고는 거의 없었다. 부동산은 있었지만, 선순위 권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차량도 있었지만 이미 다른 채권자가 먼저 압류한 상태였다.

이 과정에서 시간이 흘렀다. 강제집행은 빠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현실은 느리고 번거로웠다. 서류 준비, 송달, 집행 신청, 보정 요구. 그 사이 채무자는 더욱 철저하게 자산을 비워갔다. 공증이 있었기에 소송은 피했지만, 회수를 방해하는 시간은 충분히 주어지고 있었다.

3. 공증 전에 보지 못했던 채무자의 진짜 상태

 

돌이켜보면, 문제는 공증 이후가 아니라 공증 이전에 있었다. 나는 공증을 받는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채무자의 실질적인 재무 상태를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공증을 해도 된다”고 말하는 태도가 곧 지급 의지로 보였고, 그것이 지급 능력까지 보증해 준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강제집행 과정에서 드러난 채무자의 상태는 전혀 달랐다. 이미 여러 채무가 있었고, 일부는 조정 절차에 들어가 있었으며, 개인적으로 관리 중인 채무도 상당했다. 공증은 그 모든 구조 위에 얹힌 하나의 서류에 불과했다. 집행권원은 있었지만, 집행할 대상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공증은 채무자의 재산을 고정시켜주지 않는다. 채무자가 마음만 먹으면, 공증 이후에도 충분히 자산을 이동시키고 정리할 수 있다. 나는 이 단순한 사실을 너무 늦게 체감했다. 공증은 권리를 만들어주지만, 현실을 바꿔주지는 않는다.


4. 판결 없이도 패소한 것과 다름없는 결과

 

결국 강제집행은 몇 차례 시도 끝에 중단되었다. 법적으로는 내가 틀린 것이 없었다. 공증도 유효했고, 집행 절차도 적법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손에 쥔 것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집행 비용과 시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기회비용이 더 컸다.

이 상황이 가장 괴로운 이유는, 패소 판결도 없다는 점이었다. 법원에서 “기각”이나 “패소”라는 명확한 결론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집행할 것이 없다는 현실 앞에서 조용히 멈췄을 뿐이다. 하지만 경제적 결과만 놓고 보면, 이는 명백한 실패였다.

공증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 실패를 더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공증까지 했는데 왜?”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질문은 이렇게 바뀌었다. “공증만으로 충분하다고 왜 믿었을까?”


5. 공증은 무기가 아니라 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이 사건 이후, 나는 공증을 대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공증은 더 이상 최종 안전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조건 중 하나일 뿐이며, 오히려 공증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일수록 더 냉정하게 구조를 봐야 한다는 신호일 수 있다.

이제 나는 공증 전에 반드시 확인한다. 채무자의 자산 구조, 기존 채무, 선순위 권리, 현금 흐름. 그리고 공증 이후에도 바로 집행이 가능한 상태인지 시뮬레이션한다. 공증이 있다는 이유로 시간을 벌어주지 않는다. 공증은 즉시성과 결합될 때만 의미가 있다.

공증을 받았는데도 회수가 안 된 사건은 나에게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법적으로 옳은 선택이 항상 경제적으로 옳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문서 하나에 기대어 판단을 단순화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배웠다. 이 글은 그 대가로 얻은 기록이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착각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나만의 경고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