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사람은 다르다”라는 생각이 시작되는 순간
실무를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사람은 다른 채무자랑은 좀 다르다.”
이 문장은 겉보기에는 경험에서 나온 직관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무의 관점에서 보면, 이 말은 위험 신호의 시작점이다. 왜냐하면 이 판단은 언제나 객관적 데이터가 아니라, 개인적인 인상과 감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다르다”라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대화를 몇 번 나눈 뒤, 태도와 말투, 설명 방식, 눈빛, 과거의 이력 조각들을 근거로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말이 통한다”, “도망칠 사람 같지는 않다”, “그래도 책임감은 있어 보인다.” 이 모든 표현은 공통점이 있다. 측정할 수 없고, 기록으로 남지 않으며, 검증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 판단이 실무자의 역할을 서서히 바꾼다는 데 있다. 원래 실무자는 위험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다르다”라는 생각이 들어오는 순간, 실무자는 판단자에서 해석자로 변한다. 숫자와 구조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말을 해석하고 의도를 읽는 사람이 된다. 이 변화는 아주 조용히 일어나지만, 결과는 치명적이다.
이 착각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실무자의 경험이 오히려 독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수많은 채무자를 봐왔다”, “보통 위험한 사람들은 이런 느낌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개입되면, 주관적 인상은 경험이라는 이름의 확신으로 둔갑한다. 이 확신은 검증을 밀어내고, 예외를 허용한다.
결국 “이 사람은 다르다”라는 판단은, 사실상 이렇게 번역된다.
“이번만은 기존 기준을 적용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실무에서 기준을 포기하는 순간, 실패는 이미 절반 완성된 상태다.
2. 기준을 무너뜨리는 ‘예외’의 논리
실무에서 기준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다. 기준은 과거 수많은 실패 위에 쌓인 방어선이다. 연체 대응 시점, 담보 평가 방식, 추가 자금 집행 조건, 유예 허용 범위 등은 모두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과도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준은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만들어진다.
“이 사람은 다르다”라는 착각은 이 기준을 하나씩 무너뜨린다.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예외다. 서류 제출 기한을 조금 미뤄주거나, 추가 확인 없이 설명을 믿어주는 정도다. 실무자는 이를 기준 파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연한 대응, 상황 판단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하지만 기준은 한 번 깨지면 반드시 다음 예외를 요구한다.
“지난번에도 봐줬잖아요.”
“그때는 이해해 주셨잖아요.”
채무자는 예외가 허용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빠르게 학습한다. 그리고 그 예외를 전제로 행동한다. 반면 실무자는 점점 기준을 들이밀기 어려워진다. 이미 한 번 사람을 ‘다르게’ 봤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점은, 위험이 누적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개별 판단 하나하나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판단들이 연결되면서 구조는 점점 취약해진다. 연체는 장기화되고, 담보 가치는 하락하며, 대응 선택지는 줄어든다.
실무자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처음부터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 말은 사실이다. 대부분의 실패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문제가 있어도 문제로 인식하지 않도록 만든 판단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판단의 이름이 바로 “이 사람은 다르다”다.

3. 착각이 확신으로 변하는 위험한 지점
어느 순간부터 실무자는 불편한 신호를 보면서도 스스로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입금 지연이 반복되지만 “원래 상황이 안 좋다고 했지”라고 넘긴다.
약속이 어긋나도 “그래도 연락은 받는다”는 점을 근거로 삼는다.
이 단계에서 착각은 단순한 오판이 아니라 확증 편향으로 변한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이 이미 내린 결론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이다. 실무자는 이제 무의식적으로 “이 사람이 다르다는 증거”만 수집한다. 반대로 위험 신호는 일시적 문제, 외부 변수, 불운으로 해석된다.
이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그래도 도망가지는 않잖아.”
하지만 실무에서 도망가지 않는다는 것은 상환 능력의 증거가 아니다. 단지 아직 도망칠 필요가 없을 뿐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무자는 이 사실을 신뢰의 증거로 해석한다.
이 확신이 굳어질수록, 실무자는 점점 더 깊이 개입한다. 추가 자금 집행, 연체 이자 유예, 법적 조치 보류 등 이전에는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하게 된다. 이 선택들은 모두 같은 전제 위에 있다.
“이 사람은 결국 해결할 것이다.”
문제는, 이 전제가 무너지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항상 실무자가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을 지난 뒤에 찾아온다.
4. “그래도 믿었던 이유”라는 자기기만
결과가 나빠지기 시작하면, 실무자는 두 가지 선택지 앞에 선다.
하나는 지금까지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판단을 계속 정당화하는 것이다.
대부분은 후자를 택한다. 왜냐하면 전자를 선택하는 순간,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최선이었다.”
“그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그렇게 판단했을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실패지만, 과정은 합리적이었다.”
이 말들은 실무자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실패를 더 깊게 만든다.
자기합리화는 실패 인식을 늦춘다. 실패를 인식하지 못하면, 대응도 늦어진다. 이 지연은 손실을 키운다. 그리고 손실이 커질수록, 실무자는 더 강하게 자신을 합리화한다. 이 악순환은 결국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조차 흐릿하게 만든다.
이 단계에 이르면 실무자는 더 이상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없다. 이미 너무 많은 결정이 연결되어 있고, 너무 많은 말을 해버렸으며, 너무 많은 예외를 허용했다. 이제 와서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 된다.
결국 “이 사람은 다르다”라는 착각은 이렇게 변한다.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가야 한다.”
그리고 이 문장은 실무에서 가장 위험한 문장 중 하나다.
5. 사람을 보지 말고 구조를 보라는 원칙
이 실패 기록의 결론은 단순하다.
사람은 다르지 않다. 구조만 다를 뿐이다.
실무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것은 사람의 성품이 아니라, 구조와 조건이다. 상환 능력은 인격에서 나오지 않고, 숫자와 흐름에서 나온다.
“이 사람은 다르다”라는 생각이 들 때, 실무자는 반드시 멈춰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판단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근거가 있는가?”
“같은 조건의 다른 채무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 없다면, 그 판단은 배제되어야 한다.
재발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의지나 냉정함이 아니다. 시스템과 기준이다. 개인의 인상을 판단 근거에서 배제하고, 조건 충족 여부만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도록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감정이 개입될 여지를 줄이는 것이,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선택이다.
이 글은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다.
실무자가 스스로를 망가뜨린 과정을 남기는 기록이다.
그리고 같은 함정에 빠질 누군가를 구하기 위한 기록이다.
“이 사람은 다르다”라는 착각의 끝에는 언제나 같은 결과가 있다.
손실, 후회, 그리고 늦은 깨달음.
이 아카이브의 목적은 단 하나다.
그 끝에 도달하기 전에, 멈추게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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