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제 소송만 하면 된다”는 안도감의 시작
연체가 길어지고, 연락이 뜸해지고, 말로는 더 이상 진전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실무자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문장이 떠오른다.
“이제 소송만 하면 끝나겠지.”
이 문장은 단순한 계획이 아니라, 안도감에 가깝다. 더 이상 감정적으로 소모하지 않아도 되고, 채무자의 말에 휘둘리지 않아도 되며, 복잡한 판단을 내려야 할 필요도 없어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소송은 실무자에게 일종의 ‘버튼’처럼 인식된다. 누르면 상황이 정리되고, 결과가 나오고,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다. 특히 소규모 대부업이나 NPL 실무자는 은행처럼 전담 법무팀이나 회수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소송이라는 선택지는 마지막이자 가장 강력한 수단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 인식이 소송의 본질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는 데 있다. 소송은 해결이 아니라 단계다. 채권 회수의 시작일 뿐, 끝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실무자들은 소송을 결승선으로 착각한다. “판결만 받으면 된다”, “이기기만 하면 돈은 따라온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이 착각이 위험한 이유는, 소송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실무자의 사고가 멈추기 때문이다. 더 이상 구조를 보지 않고, 자산 흐름을 추적하지 않으며, 채무자의 다음 행동을 예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법원의 판단에 맡긴 채, 결과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상태로 들어간다.
그러나 현실의 소송은 실무자가 기대한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판결은 나오지만, 돈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 괴리는 “소송만 하면 끝”이라는 착각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를 뒤늦게 드러낸다.
2. 판결과 회수 사이의 거대한 간극
소송에서 이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특히 채무 관계가 명확하고 증빙이 충분하다면, 판결 자체는 비교적 수월하게 받을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많은 실무자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판결은 돈이 아니다.
판결문은 종이에 적힌 권리일 뿐, 그 자체로 현금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채무자가 자발적으로 이행하지 않는 이상, 판결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실무자가 느끼는 첫 번째 좌절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겼는데 왜 돈이 안 나오지?”라는 질문 앞에서, 법은 갑자기 멀고 차가운 존재가 된다.
집행은 또 다른 전쟁이다. 채무자의 재산을 파악해야 하고, 이미 다른 채권자들이 선점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며, 집행 비용과 시간도 감수해야 한다. 특히 소송에 들어가는 시간 동안 채무자의 자산 구조는 크게 변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미 명의는 바뀌었고, 계좌는 비워졌으며, 담보 가치는 하락해 있다.
이때 실무자는 깨닫는다.
소송을 준비하느라 가장 중요한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사실을.
연체 초기에 취할 수 있었던 조치들, 자산이 남아 있을 때의 대응 타이밍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소송이라는 절차에 기대는 동안, 회수 가능성은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다.
판결과 회수 사이의 이 간극은, 소송을 과대평가한 대가다. 법은 권리를 확인해 줄 뿐, 실무자의 손실을 자동으로 복구해 주지 않는다. 이 사실을 늦게 깨달을수록, 손실은 커진다.

3. 소송에 기대며 놓쳐버린 실무적 대응
“소송 들어갔으니 이제 기다리면 된다.”
이 말은 실무 현장에서 가장 위험한 문장 중 하나다. 소송이 시작되는 순간, 실무자는 종종 다른 모든 대응을 멈춘다. 채무자의 움직임을 추적하지 않고, 추가 담보 가능성을 검토하지 않으며, 협상이나 조정의 여지도 스스로 닫아버린다.
하지만 채무자는 다르다. 채무자는 소송이 제기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에 들어간다. 자산을 정리하고, 명의를 변경하고, 다른 채권자와의 관계를 재정비한다. 실무자가 법적 절차를 밟는 동안, 채무자는 현실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소규모 대부업 실무자들은 소송 비용과 시간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에, “이미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가자”는 심리에 빠지기 쉽다. 이 심리는 추가적인 선택지를 스스로 차단한다. 조기 합의, 채권 매각, 일부 회수 등 현실적인 대안들이 “지금 와서?”라는 이유로 배제된다.
결과적으로 소송은 실무자의 대응 폭을 넓혀주지 않고, 오히려 좁힌다. 모든 전략이 소송 결과에 종속되고, 그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이 시간 동안 손실은 복리처럼 누적된다.
실무자는 나중에 이렇게 말한다.
“그때 소송만 안 들어갔어도…”
하지만 문제는 소송 자체가 아니라, 소송을 만능 해결책으로 착각한 판단이다.
4. 법이 대신 해결해 줄 거라는 책임 전가
소송에 대한 착각의 핵심에는 하나의 심리가 있다.
“이제 법이 알아서 해주겠지.”
이 생각은 실무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판단을 외주화한다. 더 이상 내가 결정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틀릴 위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법은 실무자의 판단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 법원은 주어진 자료와 주장만을 바탕으로 판단할 뿐, 채권 회수의 전략까지 설계해 주지 않는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실무자는, 소송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수동적인 위치로 밀려난다.
이 단계에서 실무자는 종종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실무에서 중요한 것은 법적 정당성이 아니라 실질 회수다. 법적으로 완벽한 판결을 받아도, 회수가 되지 않으면 그 판결은 회계상 손실로 남는다.
문제는 이 책임 전가가 조직 내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소송 중입니다”라는 말은, 더 이상의 질문을 막아주는 방패가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결과가 드러나면, 그 방패는 사라진다. 남는 것은 결과에 대한 책임뿐이다.
5. 소송은 끝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재정의
이 실패 기록이 말하고자 하는 결론은 명확하다.
소송은 끝이 아니다. 수단이다.
그리고 그 수단은 항상 다른 전략들과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실무에서 소송은 회수를 돕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자산 파악, 타 채권자 분석, 집행 가능성 검토, 협상 전략 등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소송을 하더라도, 동시에 다른 대응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소송이 시간을 벌어주는 도구가 아니라, 회수를 위한 압박 수단으로 기능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송에 들어가기 전의 질문이다.
“이 소송은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인가?”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 없다면, 그 소송은 대부분 착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 글은 법을 부정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다.
법에 기대며 실무를 멈춰버린 판단의 실패를 기록한 글이다.
그리고 같은 착각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경고다.
“소송만 하면 끝날 줄 알았다.”
이 문장은 수많은 실무자의 실패를 요약하는 말이다.
이 아카이브의 목적은,
그 문장을 다시 쓰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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