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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대부업·NPL 실무자의 실패 기록 아카이브

승소했지만 돈을 못 받은 이유

by zidan05 2026. 2. 8.

1. 판결문을 손에 쥔 순간 찾아온 착각

 

소송이 끝나고 판결문을 받아 든 순간, 실무자는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긴 시간 준비했던 서류, 법원 출석, 변호사와의 의사소통, 불안과 스트레스가 한 줄의 주문으로 정리되는 순간이다. “피고는 원고에게 ○○원을 지급하라.” 이 문장은 마치 결론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때 실무자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자리 잡는다.
“이제 돈만 받으면 된다.”

이 인식은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이 시점에서 실무자는 이미 가장 큰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판결은 돈을 만들어주는 문서가 아니라, 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확인해주는 문서에 불과하다. 이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승소는 성취가 아니라 오히려 실패의 출발점이 된다.

많은 실무자들이 이 단계에서 긴장을 풀어버린다. “이제 법적으로 끝났다”, “더 이상 내가 할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소규모 대부업이나 NPL 실무자의 경우, 소송까지 끌고 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큰 부담이었기 때문에, 승소는 심리적으로 모든 과정을 마무리한 것 같은 착각을 준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이 시점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판결이 확정되었다는 것은, 이제부터 집행이라는 전혀 다른 전쟁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실무자들은 판결문을 받는 순간, 실무적 대응의 속도를 늦추거나 멈춘다. 그리고 그 사이, 상황은 조용히 악화된다.

“승소했는데 왜 돈이 안 들어오지?”
이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실무자는 이미 한 발 늦었다.


2. 채무자에게 판결은 위협이 아니었다

 

실무자가 승소를 ‘끝’으로 인식하는 동안, 채무자는 판결을 신호로 받아들인다. 이 신호는 단순하다. “이제 진짜로 준비해야 한다.” 채무자에게 판결은 곧바로 돈을 내라는 명령이 아니라, 자산을 지켜야 할 타이밍을 알려주는 경고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실무자는 늘 같은 질문을 한다.
“판결이 났는데 왜 아무 반응이 없지?”
그러나 채무자의 침묵은 무대응이 아니라 대응 완료일 가능성이 높다. 이미 자산은 다른 이름으로 옮겨졌고, 계좌는 정리되었으며, 노출된 재산은 최소화되어 있다.

특히 소송이 장기화된 경우, 이 현상은 거의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채무자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한다. 이 시간 동안 어떤 채무자는 의도적으로 재산을 처분하고, 어떤 채무자는 가족 명의로 이전하며, 어떤 채무자는 이미 다른 채권자들과 관계를 정리해 둔다. 실무자가 판결만을 기다리는 동안, 채무자는 현실적인 생존 전략을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실무자가 이 가능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판결을 받는 데 집중한 나머지, 집행 가능성을 사전에 점검하지 않았고, 채무자의 자산 흐름을 추적하지 않았으며, 선순위 채권 구조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판결은 나왔지만, 집행할 대상이 사라진 상태가 된다.

이때 실무자는 처음으로 깨닫는다.
법은 채무자의 행동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법은 단지, 실무자가 움직일 수 있는 근거를 줄 뿐이다.
그리고 그 근거를 언제, 어떻게 쓸지는 전적으로 실무자의 몫이다.

3. 집행을 준비하지 않은 소송의 한계

 

승소했지만 돈을 받지 못한 사례를 들여다보면, 공통된 패턴이 있다.
소송은 했지만, 집행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무자는 판결 이후에야 부랴부랴 채무자의 재산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순서는 거꾸로다. 집행은 판결 이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소송 이전부터 설계되어야 한다.

집행을 위해서는 명확한 대상이 필요하다. 부동산, 예금, 급여, 매출채권 등 어떤 자산을 어떻게 묶을 것인지가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실무자들은 “이기기만 하면 알아서 집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소송에 들어간다.

이 기대는 현실에서 처참하게 무너진다. 이미 선순위 채권자가 다수 존재하거나, 담보가 과대평가되어 있거나, 집행 비용이 회수 금액보다 커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때 실무자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집행을 계속할 것인가, 손실로 정리할 것인가.

이 선택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집행을 계속하면 비용과 시간이 더 들어가고, 포기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손실로 확정된다. 이 딜레마는 대부분 사전에 집행 전략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특히 NPL 실무에서는 이 문제가 더 크게 나타난다. 채권 매입 단계에서 이미 집행 가능성은 상당 부분 결정되는데, 실무자는 종종 “판결만 받으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이를 간과한다. 결과적으로 승소는 했지만, 회수는 불가능한 채권을 손에 쥔 상태가 된다.


4. ‘법적으로 이겼다’라는 말이 만든 함정

 

승소 후 회수가 되지 않으면, 실무자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법적으로는 이겼다.”
이 말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이지만, 동시에 실패의 본질을 흐린다. 실무에서 중요한 것은 법적 승리가 아니라 실질적인 회수 결과다.

이 자기 위안은 여러 문제를 낳는다. 첫째, 실패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게 만든다. “채무자가 너무 악질이다”, “제도가 문제다”, “운이 없었다”라는 말들이 이어진다. 물론 이런 요소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실무자의 판단과 준비 과정이 충분했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둘째, 조직 내에서 책임이 모호해진다. “승소했으니 할 만큼 했다”는 인식은, 결과에 대한 평가를 흐린다. 하지만 회사는 승소 여부가 아니라, 손익으로 평가한다. 이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실무자는 반복적으로 같은 판단을 하게 된다.

셋째, 실패 기록이 남지 않는다. 승소라는 결과가 있기 때문에, 이 사례는 실패로 분류되지 않고 애매한 회색 지대에 남는다. 그러나 실무자의 계좌와 회사의 재무제표에는 명확한 흔적이 남는다. 받지 못한 돈은 결국 손실이다.

이 단계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실무자가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나는 이 채권에서 돈을 못 받았는가?”
이 질문을 회피하는 순간, 같은 실패는 형태만 바꿔 다시 나타난다.


5. 승소보다 먼저 설계했어야 할 것들

 

이 실패 기록이 도달해야 할 결론은 명확하다.
승소는 목표가 아니다. 회수가 목표다.
이 단순한 문장을 실무자는 항상 판단의 출발점에 두어야 한다.

소송을 고려하는 순간, 실무자는 반드시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이 소송을 통해 실제로 어떤 자산을 묶을 수 있는가?”
“판결이 나왔을 때, 바로 집행할 대상이 있는가?”
“이 채무자는 판결 이후 어떤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은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없다면, 그 소송은 이미 위험한 선택이다.

실무적으로는 소송 전 단계에서 자산 조사, 선순위 분석, 집행 비용 대비 회수 가능성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감정이 아니라 숫자와 구조로 판단되어야 한다. 이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소송은 의미 있는 수단이 된다.

이 글은 소송을 하지 말라는 기록이 아니다.
소송을 과대평가한 판단을 경고하는 기록이다.
승소는 박수받을 일이지만, 회수가 되지 않았다면 그 박수는 공허하다.

“승소했지만 돈을 못 받았다.”
이 문장은 실패의 변명이 아니라, 실무자의 판단을 되돌아보게 하는 문장이어야 한다.
이 아카이브의 목적은 단 하나다.
같은 문장을 다시 쓰지 않게 만드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