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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대부업·NPL 실무자의 실패 기록 아카이브

법원 절차를 과신했을 때의 함정

by zidan05 2026. 2. 9.

1. ‘법원까지 가면 해결된다’라는 믿음 | 절차 만능주의의 시작

 

소규모 대부업이나 NPL 실무자가 처음 큰 실패를 겪기 전까지 가장 굳게 믿는 문장이 있다.
“그래도 법원은 공정하잖아.”
이 믿음은 틀린 말이 아니다. 문제는 이 믿음이 어디까지 유효한지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법원은 분쟁을 판단해 주는 기관이지, 돈을 대신 받아주는 기관이 아니다. 그럼에도 실무자는 법원 절차에 들어가는 순간, 이미 절반은 해결된 것처럼 착각한다.

이 착각은 단계적으로 강화된다.
소장을 접수하고, 송달이 되고, 변론기일이 잡히고, 판결 선고일까지 오면 실무자는 심리적으로 한고비를 넘겼다고 느낀다. 특히 상대방이 법정에 나오지 않거나,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을수록 “이건 거의 끝난 사건”이라는 생각이 굳어진다. 그러나 이 시점까지 실제 회수된 금액은 0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무자는 이미 안도한다.

문제는 이 안도감이 이후 판단을 느슨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법원이 알아서 판단해 줄 거야”,
“판결문만 있으면 집행은 자동으로 되겠지”,
이렇게 책임의 무게가 자신의 판단에서 법원이라는 시스템으로 옮겨간다. 이 순간부터 실무자는 능동적인 회수 주체가 아니라 절차의 구경꾼이 된다. 그리고 이 전환이 바로 함정의 입구다.


2. 판결과 회수를 동일시한 오류 | 집행의 공백 지대

 

법원 절차를 과신한 실무자의 가장 치명적인 오류는 판결 = 회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승소 판결문을 받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이미 돈이 들어온다. 장부상으로는 미수금이 회수된 것처럼 느껴지고, 심지어 내부적으로는 “정리된 건”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판결과 회수 사이에 거대한 공백 지대가 존재한다.

이 공백 지대는 법원이 책임지지 않는다.
판결 이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언제 해야 하는지, 어떤 순서로 해야 하는지는 전부 실무자의 몫이다. 그러나 절차를 과신한 실무자는 이 공백을 너무 가볍게 본다. “판결 나왔으니까 집행 신청하면 되겠지”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집행은 단순 신청이 아니라 전략적 선택의 연속이다.

이 단계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 있다.
판결문을 받아놓고 몇 주를 그냥 흘려보낸다. 그 사이 채무자는 판결 사실을 인지하고 대응을 시작한다. 재산을 정리하고, 계좌를 비우고, 주소지를 바꾼다. 실무자는 이 모든 변화가 끝난 뒤에야 집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결과는 늘 같다. “왜 이렇게 아무것도 안 잡히지?”
이 질문이 나오는 순간, 이미 게임은 끝났다.

3. 법원이 대신 조사해 줄 거라는 착각 | 정보 수집 책임 전가

 

법원 절차를 과신했을 때 또 하나 빠지기 쉬운 함정은 정보 수집 책임을 법원에 떠넘기는 태도다.
“법원에서 알아서 조회하지 않나?”,
“재산이 있으면 판결문에 반영되지 않나?”
이런 생각은 실무 경험이 쌓일수록 더 위험해진다. 왜냐하면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법원은 분쟁 해결을 위해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사실을 판단한다. 그러나 채무자의 전반적인 자산 구조, 은닉 가능성, 다른 채권자의 존재까지 전면적으로 조사해 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실무자는 법원이라는 이름에 기대어, 스스로 해야 할 조사를 미룬다. 이 미룸이 바로 회수 실패의 씨앗이다.

특히 소송 과정에서 상대방이 조용할수록 실무자는 더 안심한다. “저쪽에서 별말 없으니 정리될 거야.” 하지만 이 침묵은 종종 준비 중이라는 신호다. 법원은 침묵의 의미를 해석해 주지 않는다. 그 해석과 대응은 전부 실무자의 몫이다. 이 책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 법원 절차는 보호막이 아니라 눈을 가리는 장막이 된다.


4. 절차가 길어질수록 안전하다는 오해 | 시간 편향의 위험

 

법원 절차를 밟고 있으면 시간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 시간의 흐름이 실무자에게는 묘한 안정감을 준다.
“아직 소송 중이니까”,
“절차가 진행 중이니까”,
이 말 들은 행동을 미루는 완벽한 변명이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위험은 줄어들지 않고 형태만 바뀐다.

소송이 길어질수록 채무자는 상황에 적응한다.
처음에는 불안해하던 채무자도, 시간이 지나면 법원 일정에 익숙해진다. 이 익숙함은 곧 대응 전략의 정교화로 이어진다. 반면 실무자는 절차에 의존한 채 능동적인 움직임을 줄인다. 이 격차가 바로 회수 불능으로 이어진다.

특히 “법원에서 아직 결정이 안 났으니 움직이면 안 된다”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법원 절차와 별개로 할 수 있는 준비, 정보 수집, 시나리오 점검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절차를 과신한 실무자는 이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판결이 나는 순간,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집행이라는 전혀 다른 국면에 던져진다.


5. 법원은 도구일 뿐이다 | 절차를 활용하는 쪽은 실무자다

 

이 실패가 남기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분명하다.
법원은 해결책이 아니라 도구라는 점이다.
도구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무기가 될 수도 있고, 장식품이 될 수도 있다. 법원 절차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맹신하면 판단을 마비시키고, 제대로 이해하면 회수를 앞당기는 수단이 된다.

소규모 대부업과 NPL 실무자가 반드시 가져야 할 태도는 이것이다.
“법원은 내 판단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
이 인식이 서지 않으면, 어떤 절차를 밟아도 결과는 비슷하다. 승소 판결을 받아도 돈을 못 받고, 집행권원을 확보해도 허탈감만 남는다.

이 글은 법원을 불신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법원을 정확히 이해하라는 기록이다.
절차를 믿되, 판단을 맡기지 말 것.
판결을 활용하되, 회수를 위임하지 말 것.
이 기준이 세워진 실무자만이 다음 단계로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