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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질병

세이병과 테이삭스병, 강글리오시드 축적의 신경학적 파장

by zidan05 2025. 4. 20.

강글리오시드증(Gangliosidosis)이란? — 신경세포 안의 독성 물질 축적

 

강글리오시드증은 **신경세포 내 특정 지질 물질인 강글리오시드(Ganglioside)**가 효소 결핍으로 인해 분해되지 않고 축적되는 유전성 리소좀 축적 질환입니다. 이 중에서도 **GM2-강글리오시드증(GM2 gangliosidosis)**은 특히 중추신경계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하며, 대표 질환으로는 **테이 삭스 병(Tay-Sachs disease)**과 **세이병(Sandhoff disease)**이 있습니다.

이 질환들은 유전적으로는 상염색체 열성 유전방식을 따르며, 헥소사미니다제 A(HEX A)와 헥소사미니다제 B(HEX B) 효소의 결핍 또는 기능 저하로 인해 발생합니다. HEX A는 GM2 강글리오시드를 분해하는 데 필수적인 효소로, 이 효소가 없거나 불완전하게 기능할 경우 GM2가 뉴런 내에 과도하게 축적되어 결국 신경세포의 기능 이상 및 세포 사멸로 이어지게 됩니다.

세이병과 테이삭스병은 발생 원인은 유사하나, 결핍되는 효소 종류와 임상 양상이 다르며, 공통적으로 정상적인 신경 발달을 보이다가 영아기 또는 소아기부터 점차 신경학적 퇴행을 겪게 됩니다. 뇌와 척수의 신경세포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지능 저하, 운동 능력 상실, 간질, 청력 및 시력 손실, 조기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강글리오시드증은 단순한 유전자 결함이 아니라, 세포 내부의 독성 스트레스가 점진적으로 쌓이면서 생리학적 균형이 무너지는 과정이며, 이는 곧 신경계 전체의 구조와 기능을 붕괴시키는 파괴적인 질환입니다.


테이삭스병과 세이병의 유전학적 차이와 발병 기전


**테이삭스병(Tay-Sachs disease)**은 HEXA 유전자의 병리적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하며, 그 결과 **헥소사미니다제 A(HEX A)**의 활성이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결여됩니다. 반면, **세이병(Sandhoff disease)**은 HEXB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HEX A뿐만 아니라 HEX B 효소도 동시에 결핍되는 더 중증의 형태입니다. 이로 인해 세이병은 일반적으로 더 빠르게 진행되고, 더 광범위한 신경계 증상을 동반합니다.

두 질환 모두 GM2 강글리오시드의 대사 경로가 차단되면서 뇌 조직 내 축적이 일어나고, 이 축적은 뉴런을 팽창시키고 주변 조직과의 상호작용을 방해합니다. 결국 뉴런은 기능을 잃고 자가사멸(apoptosis)을 유도하며, 이는 뇌 백질의 위축과 중추신경계 퇴행을 동반합니다.

테이삭스병은 특히 중앙유럽계 유대인(Ashkenazi Jewish) 인구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빈도로 나타나며, 유전자 보인자 검사가 활성화된 지역에서는 출산 전 유전자 선별검사로 발병을 예방하기도 합니다. 반면 세이병은 다양한 인종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며, HEXB 유전자 자체의 돌연변이 유형이 매우 다양해 유전자 진단의 복잡성이 큽니다.

이들 질환은 단일 유전자 질환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리소좀, 소포체, 자가포식 경로 등 세포 내 다양한 메커니즘이 얽혀 있으며, 강글리오시드 외에도 다른 리소좀 기질의 대사 이상까지 동반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이들 질환은 세포 생물학적 측면에서 고도로 복잡하고 정밀한 연구가 필요한 분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세이병과 테이삭스병, 강글리오시드 축적의 신경학적 파장


신경학적 증상과 질환의 진행 경과

 

테이삭스병과 세이병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는 **영아형(infantile type)**으로, 생후 3~6개월까지는 정상적인 발달을 보이다가 이후 빠르게 운동 기능 및 인지 기능이 퇴행하며, 점차 심각한 신경학적 이상이 나타납니다. 이 시기에는 부모가 아기의 시선 반응 저하, 근긴장 저하, 빠른 발달 지연 등을 먼저 감지하게 됩니다.

이후 질환이 진행됨에 따라 다음과 같은 증상이 나타납니다:

청력 및 시력 소실: 시신경 퇴행과 뇌 시각중추 손상으로 인해 시력이 급격히 저하되며, 눈 안저 검사에서는 **‘체리레드 스팟(cherry-red spot)’**이라는 특징적인 소견이 관찰됩니다.

근육 긴장 상실 및 운동 불능: 사지의 근육 조절 능력이 점점 떨어지며, 결과적으로 완전한 무기력 상태에 도달합니다.

간질 발작: 대부분의 환자가 1세 전후부터 반복적인 발작 활동을 보이며, 뇌전증약에도 반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호흡 기능 저하 및 연하곤란: 질환 말기에는 호흡 근육이 마비되거나 연하 기능이 상실되어, 기도 흡인과 폐렴 등의 합병증이 발생하며, 이는 사망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이러한 증상들은 수 개월 내 급속도로 진행되며, 대부분의 영아형 환자들은 만 3세 전후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일부 청소년형 혹은 성인형에서는 진행이 다소 느리며, 운동실행장애, 정서 불안정, 정신병적 증상, 지능 저하 등이 장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테이삭스병과 세이병은 대표적인 신경 퇴행성 유전질환으로 분류되며, 조기 진단과 돌봄 체계 확립이 생존기간과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진단과 치료의 현황, 그리고 희망의 신약 연구

 

테이삭스병과 세이병의 진단은 혈액 내 헥소사미니다제 A 및 B 효소의 활성 측정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를 통해 효소 결핍 여부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후 HEXA 또는 HEXB 유전자의 유전자 검사로 정확한 변이 분석이 가능하며, **산전 진단(양수 검사 또는 융모막 검사)**도 고위험군에서 시행됩니다.

치료 측면에서는 현재까지도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연구는 빠르게 진척 중이며, 특히 다음과 같은 전략들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효소 보충 요법(ERT): HEX A/B 효소를 인공적으로 생성해 체내에 주입하는 방식이지만, **혈뇌장벽(BBB)**을 넘는 것이 가장 큰 난관입니다.

유전자 치료: AAV(아데노부속바이러스) 기반의 유전자 전달 시스템을 통해 HEX 유전자 자체를 보완하려는 접근이 진행 중이며, 최근에는 임상 1상 시험도 시작된 상태입니다.

소분자 샤페론 치료제: 효소의 접힘을 도와 기능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효소의 잔여 활성이 있는 환자군에서 유망한 효과를 보입니다.

대증치료: 간질 조절, 물리치료, 호흡재활, 영양 관리 등 증상 중심의 치료로 생존 기간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NGS 기반 신생아 선별검사 확장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고위험 유전자 보인자를 조기에 확인하고 예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리고 있습니다. 또한 환자 단체와 희귀질환 재단의 후원으로 신약 개발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은 이 질환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