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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대부업·NPL 실무자의 실패 기록 아카이브

담보가 있다고 안심했던 대출의 최후

by zidan05 2026. 1. 31.

1. 담보가 있다는 이유로 리스크를 과소평가했던 첫 선택

 

대출 실행 당시, 나는 이 건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거래로 분류했다. 차주의 재무 상태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담보가 그 불완전함을 보완해줄 것이라 믿었다. 감정가 기준 담보 여유는 충분했고, 선순위 채권도 명확했으며, 서류상 권리관계 역시 단순해 보였다. 그래서 이 대출은 “관리만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실행되었다.

하지만 이 판단에는 치명적인 전제가 숨어 있었다. 담보를 위험을 줄여주는 요소로만 해석한 것이다. 담보는 분명 리스크 관리 수단이지만, 동시에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나는 담보의 존재로 인해 차주의 상환 능력, 현금 흐름의 지속성, 사업 구조의 취약성을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대출은 담보가 없었다면 아예 실행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이다. 담보가 없으면 하지 않았을 대출을, 담보가 있다는 이유로 실행했다는 사실. 이는 리스크를 줄인 것이 아니라, 리스크의 성격을 바꿔버린 선택이었다. 담보는 상환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상환이 실패했을 때 손실을 줄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 둘을 혼동했고, 그 혼동이 이후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2. 담보 의존이 연체 초기 대응을 무디게 만든 과정

 

연체가 처음 발생했을 때, 나는 평소보다 한 템포 느리게 반응했다. 담보가 없는 대출이었다면 즉시 상황 점검과 강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담보가 있으니 조금 더 지켜봐도 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이 판단이 바로 문제의 시작이었다.

연체 초기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와 일관성이다. 그러나 담보가 있다는 이유로, 나는 이 원칙을 스스로 깨뜨렸다. 첫 연체는 가볍게 넘어갔고, 두 번째 연체에서도 경고 수위는 낮았다. 차주 역시 이 반응을 정확히 읽었다. 대응이 느리고, 압박이 없다는 것은 곧 ‘아직 위험하지 않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 시점부터 대출의 성격은 변하기 시작했다. 상환을 중심으로 한 관계에서,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하는 관계로 바뀌었다. 담보가 있다는 사실은 차주에게도 알려진 정보였고, 그것은 오히려 상환에 대한 긴장감을 낮추는 요소로 작용했다. 나는 담보가 방패가 되어줄 것이라 믿었지만, 실제로는 방패 뒤에 숨어 대응을 늦춘 셈이었다.


3. 담보 실행을 검토하며 드러난 현실과 숫자의 차이

 

연체가 장기화되면서 결국 담보 실행을 검토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담보에 대한 인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서류상으로 보던 담보와, 실제로 시장에서 실행해야 하는 담보는 전혀 다른 대상이었다. 감정가는 참고 자료에 불과했고, 실제 매각 가능 금액은 시장 상황, 물건 상태, 이해관계자의 존재 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특히 시간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담보를 실행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 사이 연체 이자는 계속 쌓이고, 관리 비용도 발생한다. 선순위 채권이 예상보다 늘어나거나, 점유 문제와 같은 변수가 등장하기도 한다. 담보가 있다는 이유로 미뤄왔던 시간들이, 이 단계에서 고스란히 비용으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가장 뼈아픈 사실은, 담보를 실행해도 모든 손실을 회수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담보는 최후의 수단이지, 손실을 없애주는 마법의 장치가 아니다. 담보가 있다고 안심했던 대출의 최후는, 담보의 한계를 몸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4. 담보 중심 사고가 가려버린 차주의 구조적 문제

 

이 대출을 다시 되짚어보면, 실패의 핵심은 담보가 아니라 차주의 구조였다. 수입원의 불안정성, 사업 구조의 취약함, 외부 채무의 존재. 이 모든 요소는 처음부터 존재했지만, 담보라는 이유로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담보가 모든 것을 덮어줄 것이라는 착각이 판단을 단순화시켰다.

담보 중심 사고는 실무자를 편하게 만든다. 복잡한 분석 대신 “그래도 담보가 있다”는 한 문장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편함은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 상환 능력을 정밀하게 보지 않은 대출은, 결국 담보 실행이라는 가장 비싼 단계로 이동한다.

나는 이 대출을 통해 명확히 배웠다. 대출의 본질은 언제나 상환이라는 사실을. 담보는 그 상환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장치일 뿐이다. 이 순서가 뒤바뀌는 순간, 대출은 이미 위험한 구조로 들어선다.


5. 담보가 있어도 관리가 없으면 결말은 같다

 

이 경험 이후, 나는 담보를 바라보는 기준을 완전히 바꾸었다. 담보가 있다고 해서 안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빠르고 더 엄격하게 관리해야 할 이유로 받아들인다. 담보가 있는 대출일수록 초기 연체 대응은 더 빨라야 하고, 기준은 더 명확해야 한다.

담보가 있다고 안심했던 대출의 최후는, 관리의 부재가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담보는 리스크를 없애주지 않는다. 관리가 없으면 담보도 무력해진다. 이 단순한 진리를 나는 값비싼 경험을 통해 배웠다.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분명하다. 같은 착각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담보는 선택의 근거가 아니라, 관리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이 원칙을 잊는 순간, 담보 대출의 결말은 언제나 비슷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