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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대부업·NPL 실무자의 실패 기록 아카이브

시세보다 ‘호가’를 믿은 결정적 실수

by zidan05 2026. 2. 1.

1. 시세 대신 호가를 선택했던 첫 판단의 출발점

 

이 대출을 검토하던 시점의 나는 숫자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거래된 숫자가 아니라 불려진 숫자를 보고 있었다. 인근 매물들의 호가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중개인은 그 가격대를 자연스럽게 ‘시장 가격’처럼 설명했다. 실제 거래 사례와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차이가 이 대출의 성패를 가를 정도로 중요하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시세는 과거의 결과이고, 호가는 현재의 기대다. 이 둘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호가를 시세의 상한선이 아니라, 시세의 진행형으로 받아들였다. “지금은 거래가 없지만, 이 가격대가 기준이 될 것이다”라는 말은 논리처럼 들렸고, 나는 그 논리에 기대를 덧붙였다. 이 기대가 판단을 흐렸다.

담보 평가 과정에서 나는 호가를 기준으로 여러 계산을 했다. 담보 여유율, 회수 가능 금액, 최악의 상황에서도 방어할 수 있는 범위. 이 모든 계산의 출발점이 실제로 성사된 거래가 아니라, 아직 성사되지 않은 숫자였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 순간부터 이 대출은 보수적인 구조가 아니라, 낙관적인 가정 위에 세워진 구조가 되었다.


2. 호가가 유지되면 시세도 유지된다고 믿은 심리

 

시간이 지나도 호가는 쉽게 내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매도자들은 가격을 고수했고, 일부는 더 높은 가격을 부르기도 했다. 이 모습을 보며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도 시장이 무너지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건 시장을 본 게 아니라 매도자의 심리를 본 것이었다.

호가는 거래가 없을수록 더 쉽게 유지된다. 거래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가격 조정의 압박을 늦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정체 상태를 안정으로 오해했다. 실제로는 수요가 사라지고 있었고, 매수자들은 시장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호가는 유지되고 있었지만, 시세는 이미 형성되지 않고 있었다.

이 착각은 담보 대출이라는 구조에서 더 강화되었다. 담보가 있으니, 최악의 경우라도 회수는 가능하다는 생각. 그리고 그 회수의 기준이 여전히 호가라는 점. 나는 자신을 스스로 설득하고 있었다. 불확실한 시장을 직시하기보다는, 변하지 않는 숫자에 기대고 있었다. 이 판단은 냉정한 분석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 장치에 가까웠다.

3. 거래가 사라진 시장에서 드러난 호가의 실체3.

 

연체가 본격화하고 담보권 실행을 현실적으로 검토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거래가 없는 시장’을 제대로 마주했다. 문의는 거의 없었고, 실질적인 매수 의사를 밝히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호가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것은 종이 위의 숫자에 불과했다. 거래가 없으면 시세도 없다. 이 단순한 사실을 그제야 체감했다.

매각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가격 조정을 검토하자, 상황은 빠르게 달라졌다. 소폭 조정으로는 반응이 없었고, 의미 있는 조정을 하자 그제서야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명확히 깨달았다. 호가와 시세의 차이는 점진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갑자기 벌어진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시간이었다. 호가를 믿고 기다린 시간 동안 시장은 이미 한 단계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만약 초기부터 실제 거래 기준으로 판단했다면 선택할 수 있었던 대응들이, 이 시점에서는 모두 늦어 있었다. 담보 가치 하락은 단번에 현실화했고, 손실은 숫자로 확정되기 시작했다.


4. 호가 기준 판단이 연체 대응 전반을 망친 구조

 

호가를 믿은 판단은 단순히 담보 평가에서 끝나지 않았다. 연체 관리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담보 여유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초기 연체 대응은 느슨해졌고, 대응 수위는 계속 미뤄졌다. “아직은 괜찮다”라는 말이 반복될수록, 상황은 더 악화했다.

연체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초기 주도권이다. 하지만 나는 호가라는 숫자에 기대어 그 주도권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실제 시세를 기준으로 했다면 즉시 대응해야 했을 시점에서도, 나는 상황을 관망했다. 이 관망은 선택이 아니라 회피에 가까웠다.

결국 가장 불리한 시점에서 가장 강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이미 시장도, 차주의 태도도, 선택지도 모두 변해 있었다. 손실은 시장 때문만이 아니라, 현실이 아닌 숫자를 기준으로 판단을 미룬 결과였다.


5. 시세가 아닌 호가를 믿었을 때 남는 유일한 교훈

 

이 경험 이후, 나는 담보 평가에서 호가를 철저히 분리한다. 실제 거래 사례, 거래 속도, 시장의 체온만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호가는 참고 자료일 뿐, 의사결정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웠다. 특히 거래가 멈춘 시장에서는 호가는 오히려 위험 신호다.

“시세보다 호가를 믿은 결정적 실수”는 단순한 판단 착오가 아니었다. 그것은 현실보다 기대를 우선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반드시 대가를 요구했다. 담보 대출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시장이 아니라, 시장을 좋게 해석하려는 실무자의 마음이다.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명확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대출은 기대가 아니라 결과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호가는 말이고, 시세는 증거다. 이 구분을 흐리는 순간, 아무리 좋아 보이는 담보도 손실을 막아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