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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대부업·NPL 실무자의 실패 기록 아카이브

경매로 가면 해결될 줄 알았던 착각

by zidan05 2026. 2. 1.

1. “최악은 경매”라는 생각이 만들어낸 초기 대응 지연


연체가 발생했을 때, 많은 실무자는 마음속으로 하나의 결론을 먼저 내려버린다. “그래도 최악의 경우 경매로 가면 되지.” 이 생각은 얼핏 보면 합리적으로 보인다. 담보가 있고, 법적 절차가 명확하며, 결국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전제를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매라는 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초기 대응을 느리게 만드는 심리적 안전망으로 작용했다.

연체 초기, 차주의 말은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금 흐름이 일시적으로 막혔고, 조금만 시간을 주면 해결될 것이라는 이야기. 이 상황에서 내가 선택한 전략은 ‘지켜보기’였다. 왜냐하면 마음 한편에 “안 되면 경매로 가면 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즉각적인 압박이나 구조 재점검을 미루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판단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다. 경매는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라, 이미 모든 선택지가 소진된 이후의 최후 단계라는 점이다. 경매로 가는 순간, 주도권은 채권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절차와 구조에 넘어간다. 그럼에도 나는 경매를 마치 ‘안전한 출구’처럼 인식했다. 이 착각이 이후 모든 대응을 늦추는 출발점이 되었다.


2. 경매를 선택하는 순간 사라지는 ‘시간의 주도권’

 

경매는 법적으로 정해진 절차를 따른다. 이 말은 곧, 속도를 조절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연체 상태에서 경매를 염두에 두는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시간을 내 손에서 내려놓았다. “어차피 법대로 갈 거니까”라는 생각은, 적극적인 회수 전략을 설계할 동기를 약화시킨다.

현장에서 경매는 결코 빠르지 않다. 신청, 개시 결정, 감정, 매각 기일, 유찰, 재매각. 이 모든 과정은 몇 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 걸린다. 그 시간 동안 담보의 가치는 유지되지 않는다. 건물은 노후되고, 점유 관계는 복잡해지며, 주변 시세는 변한다. 하지만 경매를 선택한 순간, 이 모든 변화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된다.

문제는 이 시간 동안 선순위 채권자, 다른 이해관계자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경매라는 절차에 기대어 기다리고 있었지만, 다른 채권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경매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경매에 모든 것을 맡겨버린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3. 경매가 시작되면 ‘담보 가치’는 다시 정의된다

 

경매에 들어가면 담보 가치는 다시 평가된다. 이때 많은 실무자가 충격을 받는다. 자신이 알고 있던 시세, 호가, 거래 사례와는 전혀 다른 감정가가 산정되기 때문이다. 경매 감정가는 ‘최대 가치’가 아니라, 매각 가능성을 기준으로 한 보수적 평가다.

나는 담보를 검토할 때 주변 호가와 과거 거래 사례를 기준으로 충분한 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경매 감정가는 그 기대를 철저히 배반했다. 감정 과정에서는 입지, 활용도, 점유 상태, 법적 리스크가 모두 할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담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가치로 재정의되었다.

더 큰 문제는 유찰이다. 한 번 유찰될 때마다 최저매각가는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담보 가치는 숫자로 계속 깎여나간다. 경매를 ‘해결책’으로 생각했던 나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깨닫게 되었다. 경매는 가치를 회복시키는 절차가 아니라, 가치를 확정시키는 절차라는 사실을.


4. 경매 이후 드러나는 회수 구조의 잔인한 현실

 

경매가 진행되고, 낙찰자가 정해지고, 배당 단계에 들어서면 비로소 현실적인 숫자가 눈앞에 나타난다. 이 단계에서 나는 처음으로 ‘회수 구조’를 냉정하게 다시 보게 되었다. 선순위 채권자, 체납 세금, 집행 비용, 관리 비용. 이 모든 것이 차례대로 빠져나간 뒤, 남는 금액은 내가 기대했던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경매에 들어가기 전에는 ‘담보가 있으니까’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경매 이후의 회수 구조는 그 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담보는 있었지만, 내가 회수할 수 있는 담보는 거의 없었다. 후순위라는 위치는 경매라는 절차 안에서 더욱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 시점에서 가장 뼈아픈 사실은, 경매로 가기 전에 할 수 있었던 선택들이었다. 조기 회수, 구조 조정, 담보 교체, 추가 보강. 이 모든 가능성은 경매를 선택하는 순간 하나씩 사라졌다. 경매는 문제를 해결해준 것이 아니라, 선택지를 소멸시킨 마지막 단계였다.


5. 경매는 해답이 아니라 ‘패배를 확정짓는 절차’다

 

이 경험 이후, 나는 경매를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꾸었다. 경매는 해결책이 아니다. 경매는 이미 모든 전략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절차다. 따라서 경매를 고려하고 있다면, 그 이전 단계에서 무엇을 놓쳤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연체 초기 대응, 선순위 관리, 담보 구조 재점검, 시간 관리. 이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경매는 최후의 선택이 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경매를 너무 쉽게 떠올렸고, 그만큼 너무 늦게 움직였다.

“경매로 가면 해결될 줄 알았던 착각”은 단순한 판단 오류가 아니다. 그것은 실무자의 사고방식 전체를 느슨하게 만드는 위험한 믿음이다. 경매는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의 판단을 숫자로 냉정하게 증명해줄 뿐이다.

이 글을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는 분명하다. 같은 착각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담보가 있다고 해서, 경매가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진짜 안전은 경매에 가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드는 데서 나온다.